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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송평인]김종인의 ‘경제민주화’ 연구

입력 | 2012-03-02 19:29:00


송평인 논설위원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1987년 현행 6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고쳤다고 해서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은 이렇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멋진 말들로 이뤄진 조항이지만 기존의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 조정한다”는 조항과 비교해 보면 조잡함이 드러난다.

헌법 조항에선 낯선 개념


우선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부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지 내버려둬도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소득분배를 유지한다’도 이것만으로는 소득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인지 알 수 없다. ‘안정’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으로 이어지는지 ‘안정과 소득분배를 유지한다’로 이어지는지 헷갈리게 돼 있다. 전자라면 부자연스럽고 후자라면 뜻이 아리송하다.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에서도 ‘시장의 지배의 남용’과 ‘경제력의 남용’에 구별할 만한 의미 있는 차이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보다는 ‘독과점의 폐단’이 명확하다. 신문사에서 기자가 이런 식의 글을 썼다면 데스크의 가필 없이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 위원은 무엇보다 전에 없던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라는 표현을 집어넣었다. 이미 ‘균형 있는 국민경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균형을 다루고 ‘시장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가 독과점 규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경제민주화란 말이 일상에서 쓰이기는 한다. 그러나 헌법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란 표현을 보고 독일처럼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공동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노사공동결정(Zusammenbestimmung)’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했을 정도로 그 말은 생소했다. 어느 나라 헌법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말일뿐더러 국민경제의 균형발전, 독과점 규제와 구별되는 경제적 의미를 찾기 어렵다.

헌법학자들은 제119조 2항을 설명하는 데 이르면 난감해한다.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종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학 원론’에서 “경제활동 및 영업의 자유가 보장돼도 헌법 37조 2항(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에 근거해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으므로 제119조 2항은 불필요하다”고 썼다. 한마디로 사족(蛇足)이라는 얘기다. 헌법을 개정한다면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국가개입 과잉 부를 위험성


김 위원은 이런 조항을 더 장황하게 만들어놓은 데다, 정의 내리기 힘든 경제민주화라는 말까지 얹어놓았다. 지금 여야가 모두 경제민주화란 말을 정강정책에 집어넣었다. 경제민주화로 경제주체들의 관계를 조화롭게 만들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잉 해석될 소지가 크다. 독일 기본법에 ‘민주적 사회적 연방국가(ein demokratischer und sozialer Bundesstaat)’란 말이 있다. ‘사회적’이란 표현이 가진 애매모호함 때문에 독일 헌법학자들이 그 말의 의미를 제한하려 했음에도 곧잘 해석과정에서 변질돼 사회주의에 가깝게 국가의 시장개입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사족에 불과한 경제민주화가 언제라도 그런 수단이 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