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입원을 했다. 병실에서도 삶은 계속돼야 하는 고로, 살림살이가 필요했다. 쇼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아드레날린 주사라도 맞은 듯 발딱 침대에서 일어나 병원 내 편의점으로 달려갔다(다리를 질질 끌긴 했다). 세상에! 그곳에서는 단 한 종류의 비누, 똑같은 치약과 우유 등 거의 모든 품목당 한 종류의 상품만을 팔고 있었다. 편의점은 나 같은 쇼퍼홀릭 환자에게서 쇼핑하는 즐거움을 완전히 박탈함으로써 회복하려는 의지를 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머리에 감은 붕대와 환자복을 점퍼로 감싸고, 수액주머니가 매달린 이동식 받침대를 밀며 횡단보도를 두 개나 건너 꽤 큰 슈퍼마켓으로 갔다. 시트러스, 살구 혹은 우유향을 풍기는 비누 사이를 킁킁대고 오가며 행복한 고민을 하다 결국 환자의 ‘머스트해브’ 항균 비누를 사들고 병실로 돌아왔다.
그날 밤, 동시에 네 군데를 본다는 물고기 아나브렙스의 눈을 갖게 된 나는 양편 복층으로 이어진 루이뷔통과 샤넬, 불가리와 구치 매장을 한꺼번에 보면서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는 세계에서 가장 큰 두바이의 쇼핑몰이다. 스르륵 매장으로 들어가, 내 손가락은 ‘여기부터 저기까지’라고 쇼윈도를 가리켰다. 신기하게도 내 단골 가게의 샵마(샵 매니저)가 나를 맞는다. 그녀는 빨간 립스틱 바른 입술로 길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내 귀에 속삭인다.
난 순간 60개월, 아니 평생 할부를 한대도 이 구두와 옷값을 갚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샵마가 내 사인이 선명한 크레디트 카드의 영수증을 보여준다. 신이여, 정말로 이것이 제 이름일까요? 환불해야겠어요(꼭 그래야 할까).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빨간 프레임이 선명한데, 발렌티노의 유명한 레드는 아니다. 나는 텍스트를 읽는다.
‘I shop, therefore I am’
미국의 여성 현대미술작가 바버라 크루거(1945∼)의 유명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선 대개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번역하지만 나는 ‘쇼핑한다’가 더 마음에 든다. 이 말은 물론 데카르트 철학의 출발점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크루거가 이 작품을 발표한 1980년대 말, 쇼핑은 이미 후기산업사회 사람들의 신흥종교가 되었고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모든 것을 상품화해버리는 자본주의의 제단 위에 바쳐졌다. 이 무서운 경고조차 결국 소비의 쾌락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지만.
비로소 나는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안렌즈에 반사된 메가몰도, 아름다운 루부탱 하이힐도, 발맹의 반짝이는 원피스도 모두 세상의 끝, 원더랜드일 뿐이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쇼핑하는 내가 나임을 의식한다. 세계는 매트릭스가 빚어낸 허구일지라도, 내가 쇼핑하고 싶어 하는 물건을 쇼윈도에 전시하고, 감상하고, 욕망하는 내가 존재한다.
머리맡에 놓인 봉투에서 비누향을 맡는다. 세균 99%를 막아준다는 광고와 비누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 직선과 곡선이 절묘하게 만나 단단한 입체가 된 비누를 두 손으로 감싼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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消波忽溺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신이 쇼퍼홀릭임을 자각했다. 이후 암약해오다 기명으로 쇼핑 칼럼을 쓰면서 ‘커밍아웃’했다. 모든 쇼퍼홀릭에게 애정을 갖고 있으며, 기쁜 마음으로 패션과 취향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