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엄친딸(엄마친구 딸)이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나경원은 예쁘고 공부도 잘해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사’자 붙은 남자에게 시집까지 잘 간 데다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여자다. 겉으로만 보면 서울대 출신 탤런트 김태희가 돌연 비례대표가 되고서는,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남자들의 로망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1억 피부과설’이 불거졌을 때 그래서 여자들은 놀라지 않았다.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면서도, 나경원 같은 엄친딸이 기득권 구조를 또 한 번 굳히는 게 싫어 박원순 후보를 찍었다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다.
자유주의 우파의 핵심 가치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다. 학생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을 간 것처럼, 나경원은 야당 대변인 때나 시장 후보 때나 TV토론을 앞두고는 밤새워 시험 공부하듯 준비한 덕에 “똑똑하게 말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이 시장 후보를 못 구하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섰다가 낙선한 뒤 “내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 맞기 때문에 (당을 위한 희생을) 후회한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한 말은 요즘처럼 남 탓 넘치는 세상에 감동마저 준다. 나경원을 엄친딸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면, 더 많아져야 할 국민상(像)이지 증오 대상일 순 없다는 얘기다.
국가 정체성·우파 기득권에 공격
그는 정치를 하게 된 큰 이유가 아픈 딸을 키우면서 사회를 바꿀 필요성을 느껴서라고 했다. 보수라는 사람들이 사회에 무책임했기 때문에 비판받았다며 “분명한 원칙 속에서 자신의 행동과 인권 문제 등 사회문제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라고 2005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후 사정과 상관없이 현재 사안의 핵심은 나경원의 남편 김재호 부장판사가 아내의 사건과 관련해 박은정 검사에게 청탁 전화를 했느냐가 됐다. 나경원은 “기소청탁을 한 일은 없다”면서도 전화를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밝히는 게 우선이고 수사를 해서라도 밝혀야 할 일이지만, 어쩌면 통화는 했으되 청탁이라고 할 순 없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성명대로 김 판사는 탄핵받고 나경원은 정계은퇴를 할 사안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특히 나경원이 오세훈 전 시장 편에 섰다가 낙선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서 낙천시킬 궁리를 하는 새누리당 일각에선 계산을 잘해야 한다. 앞으로 줄줄이 나꼼수가 쏘는 대로 날아가는 제물이 나올 수 있다.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로 수감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을 놓고도 마케팅을 하는 민주통합당과는 게임도 안 된다. 오죽하면 변희재가 “종북이면 이념이나 있고, 친노면 의리나 있고, 나꼼수는 재주라도 있지, 새누리당은 진짜 무능좀비”라고 트위터로 칼을 날렸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 ‘전화 한 통’ 해볼 대상이 없는 보통 국민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게 사실이다. 나경원 스스로도 “정치인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국민이 옳지 않다고 도덕적으로 판단하면 비난받을 수 있다”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강조했다.
‘전화 한 통’ 특권도 내려놓을 때다
단, 대안 없이 분노만 자극해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에게는 결국 그 분노의 칼이 부메랑이 돼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다. 바로 노 정부의 한 실세였던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에서 한 말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