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의 子는 陳相을 가리킨다. 한편 事之의 之는 陳良을 가리킨다. 師는 진상의 스승 진량이다. 倍는 배반할 背(배)와 같다.
예전에 학문하는 사람은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하는 것을 매우 꺼렸고, 혼자 공부한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았다. 또 일단 스승을 따라 배우면 그 스승을 배반하는 것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겼다. 송나라 사람 邢恕(형서)는 程顥(정호)의 제자로서 한때 명성이 있었으나 벼슬에 나아간 뒤 선량한 사람들을 무고에 빠뜨렸고, 심지어 스승까지도 배반하는 행동을 저질러 후일 背師(배사)의 표본이 되었다. 元祐(원우) 연간(1086∼1094년)에 여러 차례 벼슬을 옮겨 御史中丞(어사중승)에 이르렀는데, 公卿(공경) 사이에서 명성을 얻게 되자 구법당인 司馬光(사마광)의 門客(문객)이 되었다가 곧 사마광을 모함하고 章惇(장돈)을 따랐으며, 얼마 후 장돈을 배반하고 蔡京(채경)의 심복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宋時烈(송시열)과 尹宣擧(윤선거) 尹拯(윤증) 부자 사이에 오랜 시비가 있었다. 숙종은 재위 24년(1698년)에 부친과 스승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부친이 중하다고 하여 윤증의 처지를 인정하였으나, 재위 42년(1716년)에는 윤증을 背師로 규정하는 처분을 내렸다. 이 무렵의 背師論은 정치적 문제까지 얽혀 있어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