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의 나이로 한국방송통신대 영문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개교 이래 최고령 입학생이 된 정한택 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방송대 강의실에서 첫 수업을 듣고 있다. 성남=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그는 강의실 맨 앞에 앉아 책상에 커다란 돋보기와 ‘대학생 길라잡이’ 책을 나란히 꺼내놓았다. 정 전 교수는 방송대가 1972년 개교한 뒤 40년간 입학한 240만여 명 가운데 최고령이다.
함께 강의를 들은 동기들은 “정말 아흔 살이세요”라며 놀라워했다. 11세 아래인 영문학과 2학년 이성재 할아버지(79)는 “어딜 가든 항상 내가 최고령이었는데 이젠 명함도 못 내밀겠다”며 웃었다. 강의실 막내 전지은 씨(19)도 자기보다 나이가 71세나 많은 정 전 교수가 신기한 듯 “공부하려는 의지와 자세가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교수는 “배움에 나이가 어디 있느냐”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교재에 밑줄을 그으며 강의에 집중했다.
그는 이듬해 서울대 사범대의 전신인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43년 졸업과 함께 충남 연기군 조치원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초중고교 교사와 서울대 호서대 교수를 거쳐 2009년 은퇴할 때까지 60년 넘게 교직에 있었다. 그는 “나는 평생 배우고 가르치는 일만 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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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굴곡도 정 전 교수의 교직 인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광복된 1945년 부임한 공주농업학교에서는 일본인 교사들이 모조리 본국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교장과 단둘이 학교를 일으켜야 했다. 6·25전쟁 중에는 서울 성동고를 지키다가 수도를 점령한 인민군에게 총살될 뻔하기도 했다.
정 전 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수만 명 중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있었다. 그는 1971년경 서강대로 심리학 교양강의를 나갔던 당시 만났던 ‘학부생 박근혜’를 기억해내며 “항상 네 번째 줄 맨 오른쪽 같은 자리에 앉아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수업을 경청하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2009년 교직을 떠난 뒤에도 정 전 교수는 하루 종일 손에서 읽을 것을 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지역 문화센터에 나가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구순(九旬)의 나이에 영문학과에 입학한 이유도 영어로 된 원서를 자유롭게 읽으면서 공부에 빠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나이 따지며 망설이지 말고 당장 시작하면 된다”고 강조하며 “나는 10년 뒤 백 살이 되더라도 지금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걸 배우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방송대 동기들은 “정 전 교수를 보니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영어 문장이 뭐냐’는 물음에 말없이 수첩에 ‘I can do it(나는 할 수 있다)’이라고 적으며 웃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