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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싸움꾼 다 날려버린 박근혜, 무슨 火力으로 선거 치를건가

입력 | 2012-03-06 22:38:00


배인준 주필

박근혜 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이 4·11총선 후보자를 반쯤 공천한 상황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는 “1인 쿠데타, 공천 사기극”이라고 낙천의 울분을 토하며 탈당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친노코드 밀실공천”이라는 낙천 원성이 높다.

총선서 ‘정체성 저격수들’ 나올까

공천 칼자루를 쥔 쪽이나 낙천자나 서로 할 말이 많겠지만 원래 판단의 상당부분은 자기중심적인 법이다. 그렇긴 해도 “민통(민주통합당)은 싸움꾼 살리고, 새누리는 싸움꾼 날렸다”는 한 청년논객의 촌평이 귀에 박힌다. “박 위원장이 대선까지 가려면 야당한테 많이 시달릴 텐데, 새누리당에도 싸움닭이 좀 나올지…”가 총선 관전 포인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 선거, 특히 대선은 어느 면에서 ‘저격수 전쟁’이었다. 하지만 네거티브 의혹 공세, 흑색선전의 저격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노선을 놓고 제대로 한판 붙는 ‘정체성 저격수’가 많이 나왔으면 싶다.

비대위 체제의 새누리당은 김종인 이상돈 비대위원이 열심히 보수(保守)에 물타기를 했지만, 이들은 인터넷우파·아스팔트우파 같은 보수 장외세력의 사기만 꺾어 트위터와 인터넷공간이 더욱 좌파 일색이 되고 말았다. 광우병·천안함·4대강 등의 정쟁화(政爭化) 과정에서 보수우파가 아닌 친노좌파 편에 섰던 이 씨가 새누리당의 잣대인 양 발언하자 그동안 친노종북(從北)에 맞서왔던 보수우파 장외세력은 새누리당을 논리적으로 지지할 수 없게 돼버렸다. 어느 인터넷우파 인사는 “거기다가 국회 원내에서 친노종북과 맞설 파이터들까지 숙청(낙천)시켰으니 결국 박 위원장도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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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천자 면면을 볼 때 새누리당은 보수우파를 이탈한 정당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작년부터 정책 좌클릭 경쟁에 뛰어들어 어떤 사안에선 옛날 민노당 아류 같은 인상마저 풍겼지만 공천자 이름을 죽 훑어보면 영락없는 보수우파 정당이다. 김종인 이상돈 씨가 당을 변질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분명한 좌파 중에선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더 큰 요인이다. 이런 정당 소속의 이명박 대통령이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한 것은 우파에겐 분노를, 좌파에겐 비웃음을 살 만했다.

요컨대 새누리당은 적어도 2012년의 대한민국 선거지형에선 오갈 데 없는 보수우파 정당이고, 박 위원장은 그 리더로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한다. 새누리당이 중도(中道) 무당파의 민심을 얻을 공간이 있다면 김종인 이상돈 씨의 정체성 불명 언행 덕이 아니라 민주당의 좌경(左傾) 심화 덕에 생길 부분이 더 클 것이다.

박근혜에게 절실한 ‘정치적 火力’

민주당 공천에서 강경 좌파화는 확연해졌다. 1980년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 486들의 부활은 이 당의 컬러를 더 선명하게 색칠했다. 1989년 의장이었던 임종석 씨는 비리 관련으로 1심 유죄 상태인데도 한명숙 체제의 당 사무총장으로 발탁됐고 일찌감치 공천까지 받았다.

공천자의 70% 이상이 범친노란 사실은 민주당이 친노통합당임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고, 역시 노 대통령이 시작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빗장을 지른다. 민주당 실력자인 이해찬 씨가 국무총리였을 때 한미 FTA 협상의 강력한 지휘자였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한미 FTA와 해군기지 건설은 좌파 대통령 노무현이 경제와 안보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으로 추진한 대표적 국책이다. 이해찬 문재인 한명숙 김두관 씨 등 친노 핵심들이 이제 와서 어깃장을 놓는 것은 국익을 위한 중도적 실용주의마저 팽개치고 좌파 본색을 덧칠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민주당은 더 왼쪽세력인 통합진보당과 반드시 선거연대를 해야 한다는 ‘진영(陣營)의 명령’도 거부하기 어렵다. 2010년 서울교육감 후보 단일화 등 숱한 좌파연대를 조종했던 백낙청 오종렬 씨 등 친북·반미·반보수 원조그룹이 배후에서 강력한 압력을 넣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국군 해외파병 금지 등 통합진보당 노선을 관철하려 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부터 거의 부정한다. 남한의 친북·종북 정권 만들기에 혈안이 된 북한 김정은 집단이 이들 편인 것은 당연하다.

새누리당은 왜 종북을 포함한 좌파가 집권해선 안 되고, 보수우파 자신들이 정권을 담당해야 하는지 다수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겠는가. 그 성패가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수 있다. 무지갯빛 기회주의자들은 이런 역할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총선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정치적 화력(火力)’을 창출해내느냐 여부는 박 위원장의 중대한 시험대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