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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넘어 찾은 南… 나를 맞은건 따돌림” 어느 탈북 청소년의 눈물

입력 | 2012-03-07 03:00:00

“강제북송 중단 외치지만 남쪽도 따뜻하지는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남한에 왔지만 기다린 것은 같은 반 친구들의 멸시와 따돌림, 폭력뿐이었어요.”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43)와 함께 살고 있는 새터민 김명수(가명·18) 군은 2일 새 학기가 시작된 뒤에도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 2006년 탈북한 어머니가 식당일을 끝내고 귀가할 때까지 집에서 하루 종일 인터넷 게임만 하고 있다. 김 군은 지난해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새터민 청소년들이 다니는 경기도의 한 대안학교를 그만뒀다.

2008년 12월 어머니가 1000만 원을 주고 고용한 브로커와 함께 북한군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탈북한 김 군은 2009년 8월 인천의 한 중학교에 2학년으로 입학했다.

처음에는 반 친구들도 김 군을 보통 전학생처럼 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달라져갔다. 그해 방학을 앞둔 12월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이 학교에 다니고 있던 새터민 친구 3명이 김 군에게 “일진 4명이 욕하고 괴롭혀 못살겠다. 매일같이 때리고, 옷까지 빼앗아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호소했다. 의협심이 강했던 김 군은 이들과 함께 일진 4명을 만나 “동급생끼리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지만 돌아온 건 주먹들뿐이었다. 김 군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3주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김 군은 가해 학생들에게 복수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몰매를 맞을 당시 구경만 하고 말리지 않던 동급생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결국 ‘탈북자인 내가 억울함을 말해봤자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에 체념했다. 이때부터 김 군은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미련’을 놓아버렸다.

해가 바뀌어 김 군은 3학년이 됐지만 급우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죄를 지은 듯 남한 학생들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새터민 친구도 만나기 싫었다. 간혹 누가 먼저 시비를 걸라치면 아예 피해 다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인터넷 게임에만 몰두했다. 지난해 학교장 추천을 받아 인천의 한 실업계 고교에 입학했지만 견디지 못하고 보름 만에 자퇴서를 냈다. 어머니의 권유로 들어간 새터민 대안학교도 같은 해 12월 그만뒀다.

하지만 최근 김 군에게 고충을 들어줄 멘토가 생기면서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터민 청소년에 대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나선 인천 남동경찰서가 김 군의 사정을 듣고 보안과 최현권 경사(38)를 멘토로 지정해 준 것이다. 지난달 이 경찰서가 관할 새터민 청소년 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명이 무시나 따돌림, 욕설, 폭력, 금품 갈취 등에 시달렸다고 답변했다.

더 큰 문제는 새터민 고교생들이 정규교육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찰서가 관리하는 고교생 29명 가운데 20명이 정규 학교를 자퇴했거나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을 정도다.

지난달 28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음식점에서 기자와 만난 김 군은 장래 희망을 말하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북한에서 기계체조를 배웠기 때문에 텀블링이나 무술엔 자신이 있다”며 액션배우가 되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최 경사는 “뭐든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골똘히 생각하며 고민하던 김 군은 최 경사와 함께 새로운 대안학교를 알아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