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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권순활]‘하이마트 신화’ 선종구의 추락

입력 | 2012-03-07 20:00:00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하이마트는 독일어로 ‘고향’이란 뜻을 갖고 있다. 30여 년 전 고교 시절 찾던 지방 도시의 고전음악 감상실 이름이어서 내게는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이마트로 가요∼’라는 광고 문구로 우리 귀에 익숙한 전자제품 전문점이기도 하다.

국내 가전 유통업계의 절대 강자인 하이마트를 말하려면 선종구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우전자 이사를 거쳐 하이마트가 설립된 1999년 판매본부장을 맡았다. 사장과 회장을 거치면서 회사를 키웠다. 대주주는 몇 차례 바뀌었지만 위상이 흔들리지 않았다.

‘유능한 경영자’는 착각이었다


하이마트의 급성장과 함께 선종구도 스타 경영자로 각광을 받았다. 한국유통대상, 산업포장, 대한민국광고대상을 받았다. 오너 경영자가 아니었지만 기업을 좌지우지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임직원이 모두 ‘자기 회사’를 위해 일하니 개인도, 회사도 잘됐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유능한 경영자 이미지로 포장한 그에게는 전혀 다른 얼굴이 숨겨져 있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선 회장 일가가 1000억 원대의 회삿돈과 개인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검찰은 자택, 계열사, 납품업체, 그의 딸이 대주주인 광고회사를 압수수색했다. 하이마트가 수억 원의 골프장 회원권 구입을 납품업체에 강요했다는 의혹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선종구 비리’의 전모는 곧 드러나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횡령이나 배임, 탈세와 해외 재산도피 혐의만 봐도 전형적 악덕 기업인의 냄새가 짙다. 이런 사람이 10년 넘게 탁월한 경영자로 행세했다니 분통이 터진다. 과거 그와 함께 대우에 몸담았던 사람들도 “우리도 정말 놀랐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우리 기업들의 일부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와 국민에 가장 크게 기여한 집단의 하나로 기업인을 꼽는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정치권 등에서 쏟아지는 무분별한 기업 때리기의 후유증도 걱정한다. 요즘 경제계가 체감하는 불안과 불확실성은 통계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시차를 두고 국내 투자 부진, 고용 축소, 돈의 해외탈출로 이어질 위험성이 적지 않다.

‘기업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자주 밝혀왔지만 선종구 비리 같은 사태를 접하면 힘이 빠진다. 반(反)기업-반시장 세력의 무책임한 선동 공세에 맞서는 것이 저런 ‘썩은 사과’들을 감싸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절망감마저 느낀다. 기업의 이윤추구를 비난하거나 기업인을 자선사업가로 착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공금을 빼돌리거나 재산을 해외로 도피하는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일 뿐이다.

‘기업의 友軍’을 잃지 않으려면

정상적 사고(思考)와 양식, 인간에 대한 기본적 애정과 연민을 지닌 사람이 볼 때 한국 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걸림돌은 종북(從北) 수구 좌파다. 생산적 활동과 담을 쌓은 이들은 지적으로 게으르고, 생활에서는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 체질이 몸에 배었다. 입으로는 인권과 진보를 들먹이지만 탈북자와 북한 주민의 참상과 아픔은 철저히 외면한다. 기업 비리는 국민에게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런 세력이 발호할 토양을 넓힌다. 선종구형(型) 부패 기업인은 시대착오적 종북주의자 못지않게 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을 위협하는 핵심 암 덩어리다.

기업인들이 정상적 기업 활동을 해치는 주장에 ‘그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말과 행동이 딴판인 반기업 세력의 위선과 허구를 폭로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다만 그런 목소리가 힘을 지니려면 먼저 지킬 선은 지켜야지, 그런 노력은 없이 사회 탓만 해서는 먹힐 리 없다. ‘하이마트 신화’의 주역에서 경제범죄 혐의자로 추락한 선종구 같은 기업인의 일탈이 이어지면 한국 기업을 아끼는 사람들도 기업의 우군(友軍)으로 남기 어려워진다.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