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군청 제공
동천석실에는 마루도 없고 부엌도 없고 마당도 없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다 있다. 집 바깥에 집이 있다. 집 안에 집이 있는 경우는 많지만 집 바깥에 집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집은 바람과 비와 눈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다. 집 바깥에 집이 있을 경우 이 대기 현상을 피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집은 그것을 감행하고 있다. 조선집들이 미니멀의 극단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동천석실은 그 끝을 보여주는 듯하다.
동천석실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이다. 말 그대로 한 칸짜리 집이다. 이 집을 지은 이는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1587∼1671)다. 그의 건축은 절묘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선 최고의 건축가로 고산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풍수의 달인이었고, 뛰어난 건축가이자 음향학자였으며(부용동 입구 정자인 세연정의 판석보는 물소리를 효과적으로 내기 위해 일부러 안을 비우며 구축했다), 공연기획자였다(세연정은 고산의 극장이다).
동천석실은 아슬아슬하게 바위 위에 있다. 바로 앞에는 바위 두 개가 마치 갈라진 듯 서있는데 고산은 이곳에 도르래를 설치해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그 앞의 차바위는 고산이 차를 끓이던 장소다. 찻상을 고정하기 위해 파 놓은 홈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못도 있다. 동천석실 정자 오른쪽 암벽 사이에는 석간수가 솟고 그것을 받아 모아 연지를 만들었다. 벼랑 쪽을 석담(石潭)이라 하고 바깥쪽 연지를 석천(石泉)이라 한다. 이 사이의 통로가 바로 희황교다. 동천석실은 방 한 칸이지만 그 한 칸이 거느린 세계는 상징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깊고 넓다.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