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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江漢以濯之며 秋陽以暴之라 호호乎不可尙已라

입력 | 2012-03-09 03:00:00


맹자에 따르면 공자가 별세하자 그 제자들은 삼 년의 喪期(상기)를 마친 후 子貢(자공)에게 읍례하고 목이 쉴 만큼 통곡하다가 돌아가고, 자공은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 삼 년을 산 뒤에 돌아갔다. 그 후 子夏(자하), 子張(자장), 子游(자유)는 有若(유약)이 성인(공자)과 유사하다 하여 공자를 섬기던 예로 그를 섬기고자 해서 曾子(증자)에게 강요하자, 증자는 不可하다고 했다. 증자는 유약을 공자처럼 섬길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위와 같이 말했다. 공자의 도덕이 밝게 드러나서 빛나고 결백하므로 有若이 조금이나마 彷彿(방불)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江漢은 揚子江(양자강)과 漢水(한수)를 말한다. 水量(수량)이 아주 많은 것을 비유한다. 江漢以濯之는 많은 수량의 물로 씻어 깨끗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秋陽은 가을의 광선이 강한 태양을 말한다. 秋陽以暴之는 강한 광선으로 말려 바짝 마른 상태를 표현한다. 호호는 결백한 모양을 나타낸다. 호호白髮(호호백발)이라고 할 때의 호호와 같다. 疊語(첩어·같은 글자를 중첩 사용한 단어) 다음에 乎자를 붙이면 의태어가 된다. 不可尙已는 그 결백함은 더할 나위가 없다는 말이다.

경기 여주에 가면 우암 송시열을 모시는 江漢祠(강한사)라는 사당이 있다. 본래 정조 9년(1785년)에 송시열을 일컫는 大老(대로)의 명칭을 붙여 지은 사당이다. 고종 8년(1871년) 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철거할 때 송시열을 모시던 44개의 서원이 헐리고 이 사당만 헐리지 않았다. 고종 10년(1873년) 10월에 강한사라 개칭하였다. 그 재실의 이름은 秋陽齋(추양재)이다. 江漢과 秋陽은 모두 ‘맹자’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충남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金福漢(김복한) 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사우를 秋陽祠(추양사)라고 한다. 역시 ‘맹자’에서 따온 말이다.

어떤 사람은 위의 세 구절이, 유약을 섬기길 거부한 증자의 덕을 찬미한 말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역시 이 세 구절은 본래 공자의 氣象(기상)을 표현한 가장 시적인 언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