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눈 부릅뜨고 처형 막아달라” 남한의 가족들 절규
김옥화(가명·45) 씨의 목소리는 꺽꺽 막혀서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딸과 함께 살려고 탈북자 대열에 합류했던 70세 어머니가 끝내 북송됐다는 소식을 접한 8일 김 씨는 더 이상 서 있을 기운조차 잃어버렸다.
199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김 씨는 잠깐이라도 딸의 얼굴을 보려고 북-중 국경을 넘은 어머니를 중국에서 딱 이틀 동안 만났다. 그러고는 한국으로 오길 망설이는 어머니를 고집을 부려 한국행 일행에게 안내해주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음 날 김 씨는 어머니 일행이 체포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본보 2월 24일자 A3면 “탈북자에 난민지위 주자”…
“그래도 중국은 북한과 다를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국제사회가 한결같이 규탄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안면몰수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밀어 보낼 수 있습니까. 그것도 70대 노인과 아이들까지 말입니다. 북한보다 중국이 훨씬 더 증오스럽습니다.”
▶ [채널A 영상] “북송되느니 밥에 독약 타서…” 탈북자 가족의 절규
김 씨는 어머니가 중국 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 벌써 북에 있는 가족이 모두 보위부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국이 미리 명단을 넘겨주었으니 가능한 일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21세기에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미성년자인 외동딸이 북송됐다는 비보를 8일 접한 문영은(가명) 씨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딸의 체포 소식을 들은 직후 딸을 북송시켜 고통스럽게 죽게 할 바에는 차라리 독약을 먹여 죽여서 시신이라도 한국에 사는 부모에게 돌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동안 문 씨 부부는 딸을 구출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발이 닳도록 정부 부처와 국회, 인권단체, 국제기구, 시위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보면 저녁에는 말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또다시 딸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집을 나섰다. 그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 지금 이 부부가 앞으로 언제까지 세상과 단절하고 집에 쓰러져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미성년자인 동생이 북송됐다는 소식을 들은 김성훈(가명) 군은 8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들릴락 말락 “네, 네” 하는 대답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역시 그동안 다른 가족들과 함께 동생을 구해보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성훈 군의 어머니는 탈북자들을 도와주었다는 죄로 체포돼 몇 년 전 북한 교화소에서 사망했다. 그는 이제 동생마저 또 잃게 된 것이다. 그런 성훈 군이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기자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