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저서에서 “한국은 2010년 12월 국지대응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보복을 검토하고 있었다”며 “한국 정부는 현장 군 지휘관들에게 북한의 포격과 이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촉발할 수도 있는 비(非)비례적 대응권한을 맡기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채널A 영상] 연평도 찾은 김관진 국방장관 “北도발시 굴복할 때까지 응징”
그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태 후 한미 간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기 연기를 합의한 것과 관련해 그는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과 주한미군은 당초 계획된 2012년 환수를 목표로 4년 동안 준비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일정을 변경하는 것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회고록에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태로 당초 예정됐던 뉴욕 북-미 회담이 전격 취소된 경위도 소개됐다. 천안함 사태 직후 성 김 당시 6자회담 특사를 통해 북-미 회담에 대한 한국 측 반응을 파악한 결과, 외교통상부에서는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으나 그 직후 방한한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청와대 고위 당국자에게 말했더니 이를 반기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고 알려와 전격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천안함 폭침 사태 후 일부 언론에 보도된 항공모함 조지워싱턴의 서해 투입 계획에 대해선 “태평양군사령부의 비상계획이 유출된 것으로 당시로선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2010년 7월 말 NSC 부위원회에서 조지워싱턴 투입 결론을 내렸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11월 11, 12일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열흘 안에 서해로 조지워싱턴을 보내겠다는 의향을 전달했는데 공교롭게도 며칠 뒤인 23일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조지워싱턴은 서해로 투입됐고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