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전통음식 관련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조선 초기 안동에 살았던 김유(金綏·1481∼1552)가 쓴 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을 주제로 경북 안동 군자마을에서 촬영을 했다. 수운잡방은 ‘풍류를 아는 사람들에게 걸맞은 격조 높은 요리를 만드는 방법’이란 뜻. 이 책은 고려 말기∼조선 전기 안동 지방 사림 계층의 식생활을 잘 보여준다.
당시 우리는 수운잡방에 나와 있는 여러 음식을 재현했는데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음식이 있었다. 그 이름은 타락. ‘낙타 타(駝)’에 ‘진한 유즙 락(酪)’이 합쳐진 말이다. 타락은 돌궐어의 ‘토라크’(말린 우유라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몽골어가 어원이란 설도 있음), 조선 시대에는 우유는 물론이고 그것으로 만든 제품을 통틀어 타락이라 불렀다. 수운잡방에 나오는 타락은 그 조리법이나 생김새가 딱 지금의 요구르트와 닮아 흥미로웠다. 책 속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유방이 좋은 암소의 젖을 송아지가 빨게 한 뒤, 우유가 나오기 시작할 때 젖을 씻고 우유를 받는다. 그 양이 많으면 한 사발, 적으면 반 사발 정도 되는데 체로 세 번 걸러 죽을 끓인다. 끓여 익힌 타락(숙타락)을 오지항아리에 담고 본타락(이전에 만들어둔 것)을 조그만 잔으로 하나 분량 섞어 따뜻한 곳에 두고 두껍게 덮어둔다. 밤중에 나무(꼬챙이)로 찔러 보아 누런 물이 솟아 나오면 그릇을 서늘한 곳으로 옮긴다. 만약 본타락이 없으면 좋은 탁주를 한 종지 넣어도 된다. 본타락을 넣을 때 좋은 식초를 조금 넣으면 더욱 좋다.’(수운잡방, 윤숙자 엮음, 질시루)
유산균 발효유인 요구르트의 기원은 사실 정확하진 않다. 성경에 요구르트가 나온다는 설도 있고, 지중해 근처 더운 지역에서 처음 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구르트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반 무렵이다. 러시아의 병리학자 메치니코프가 불가리아인의 장수 비결로 장내 유해 세균 증식을 막는 요구르트의 유산균을 지목한 이후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요구르트가 칼슘 흡수율을 높여주고 장을 깨끗하게 해주는 건강 음식으로 소개되면서 많은 관련 제품이 시판돼 사랑을 받고 있다.
요구르트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타락의 기원 역시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서양에서 들어온 건강식품으로만 생각했던 요구르트를 이미 500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고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우유에 막걸리를 첨가해 만든 우리 전통 요구르트. 이 타락의 조리법이 계속 이어져 왔더라면, 우리는 지금 서양식 이름인 요구르트 대신 타락이란 말을 쓰고 있지 않을까.
정윤화 단국대 교수(식품영양학) yjeong@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