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약국이라도 차린 듯했다. 프로농구 KT 전창진 감독의 부산 홈경기 숙소인 한 호텔 9층 방 창가에는 조제약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기침, 위장약 등에 수면제도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담배 5갑이 놓여있었다. 한 달 넘게 계속되는 기침을 하면서도 전 감독은 연방 담배 연기를 뿜었다.
8일 전자랜드와의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장 끝에 2점차로 패한 뒤였다. “뜻대로 안되네요. 어제 연습할 때까지 그렇게 몸도 좋고 패턴도 잘 따라 하던 선수들이 하나같이 굳어서 제대로 뛰지를 못하니….” 한숨을 내뱉는 전 감독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KT는 전 감독이 부임한 2009년부터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결과는 나빴다. 2010년 4강전에서 KCC에 1승 3패로 탈락했다.
앞선 두 차례 실패 끝에 KT는 이번에 2전 3기를 노렸지만 4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부상자가 많아 주전 몇 명에만 의존하면서 뒷심 부족에 허덕였다. 경험 부족으로 약속된 플레이를 잊어버리고 우왕좌왕하거나 파울 관리에도 허점을 드러냈다. 찰스 로드가 공을 갖고 있을 때 나머지 4명이 일제히 서 있는 일도 일어났다. 전자랜드의 거친 플레이에 휘말린 측면도 있다.
전 감독은 “나 역시 승부에 집착하다 보니 감정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분위기를 추스르고 자신감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KT는 과연 플레이오프 잔혹사를 끊을 수 있을까. 자신과의 싸움부터 이기는 게 급선무로 보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