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이 수수께끼를 미셸 푸코가 제창한 생명정치 이론으로 풀어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삶을 2가지 종류로 이해했다. 하나는 조에(zoe)고 다른 하나는 비오스(bios)다. 조에는 생명을 유지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벌거벗은 삶’을 뜻한다. 비오스는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의 ‘가치 있는 삶’을 뜻한다. 고대에는 조에와 비오스의 구별이 뚜렷했다. 푸코의 생명정치론은 근대에 들어 그 구별이 무너지면서 정치권력(비오스)이 국민의 생체(조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주요 화두가 됐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아감벤은 푸코의 통찰을 확대해 생명정치가 근대의 산물이 아니라 고대부터 지속된 서양정치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가 호모 사케르로 통칭되는 벌거벗은 생명이다. 호모 사케르는 국가 법질서에 의해 배제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국가의 존속을 뒷받침해주는 존재다. 그들은 그 공동체 최고의 예외적 존재인 주권자의 대칭점에 위치한 최악의 예외적 존재다. 호모 사케르는 벌거벗은 삶(조에)과 정치(비오스)가 만나는 교차점이며 국가 권력이 조직되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해방이 이뤄지는 토대다. 그래서 ‘신성한 존재’인 것이다.
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