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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는 일두 고택 외에도 풍천 노씨 대종가와 오담 고택, 하동 정씨 고가와 노 참판댁 고가 등이 흙담과 흙담 사이의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길을 따라가다가 높은 솟을대문이 나타나는 곳에 이르면 정려패(旌閭牌·효자와 충신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패)가 다섯 개나 걸려 있는 집이 나온다. 이 집이 정여창의 고택이다.
지어진 당시의 원형을 추정하기 매우 어렵지만 사랑채 앞의 석가산(石假山) 조형은 어느 정도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가 지어진 100년 후에 지어진 것이다. 이 집은 경남의 사대부 살림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경남 지방의 사대부 집은 경북 지방의 같이채 배치와 달리 따로채 배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 역시 사랑채, 안채, 안사랑채, 별당 등이 따로채를 이루며 담과 마당으로 나뉘고 결합돼 있다.(그러나 이런 지역적 특징은 건축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후와 지리, 인문적 조건에 따라 그런 배치가 나왔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건축에서도 학제 간 연구가 절실한 이유다)
이 석가산을 즐기는 장소가 바로 사랑채의 누마루다. 마치 석가산과 조응하듯이 활달한 처마를 펼치고 있는 이 누마루는 정여창 고택의 백미다. 안채와 사랑채가 각각 남서향과 동남향으로 방향을 달리하는 것도 다른 안대(案對)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의 풍경을 빌리고, 또 줄여서 마당에 들여 놓은 집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