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soojin@donga.com
다리는 아프고 불편했지만 주위에서 마음 써주고 위로해 주니 아이처럼 좋기도 했다. 그런데 꼭 해야 하는 숙제처럼 미룰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굿모닝 대한민국’이란 TV 프로그램에서 ‘효재처럼 사는 법’을 진행하고 있어 매주 하루는 지방 촬영을 가야 했다.
예고 없이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절뚝거리며 나타난 내 모습에 담당 PD는 “이럴 수는 없다”며 괴로워했다. 난 “이 정도쯤이야. 사는 데 문제 돼?”라며 제주 촬영을 강행했다. 제주로 향하는 공항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데 그러는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민망해 연신 바닥에만 시선을 뒀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해 ‘봄을 찾아’ 유채꽃밭 등 이곳저곳을 다니며 촬영을 했는데 저녁 무렵 문제가 생겼다. 무리한 탓에 다리가 퉁퉁 붓고 두 무릎에 마비가 왔다. 촬영을 중단하고 응급실에 가는 상황이 됐다. 깁스를 자르고 부은 발이 가라앉기만 기다리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간단한 일이 꼬여 큰 일이 되는 법. 두 곳의 응급실을 전전하고 119까지 동원됐지만 야간에 깁스를 자를 장비를 구할 수 없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깁스에서 해방된 내 다리에도 피가 돌아 살 것 같았다. 다시 촬영을 시작하려 가방 속을 뒤적이는데 늘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는 작은 수첩에서 뭔가 툭 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글귀 한 편이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중략)/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짧은 순간 시 한 편의 위안은 큰 것이어서 냉장고에 붙여놓았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문 여닫을 때마다 “안 어울리게 이런 걸 붙여 놓느냐”며 놀림 반 퉁을 주니 떼어 수첩에 끼워놓고 메모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읽던 글이었다. 난리법석 상황에서 문득 읽게 된 시 한 편의 고요함과 충만한 에너지는 이미 내겐 봄이고….
‘그래 봄 찾아 제주도 오길 잘했어.’ ‘조금 전의 고통도 잘 참아냈어.’ 꽃가위로 온 정성을 다해 깁스를 절단해주신 분, 발목 보조대를 급히 구해주신 분, 식당 안의 모든 이들의 마음이 봄꽃이었다.
나에게 작은 소원이 있다면 술 한잔 마시고 달뜬 기분으로 흥얼거릴 수 있는 예쁜 노랫말 하나 써보는 것이다. 나훈아의 ‘영영’이나 조용필의 ‘Q’처럼 아름답고 예쁜 노랫말 하나 써보고 싶다.
이효재 한복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