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조현오 경찰청장 vs 중앙지검 3차장… ‘경찰이 검사 고소’ 갈등 심화

입력 | 2012-03-14 03:00:00

조현오 경찰청장 “검-경 서로 문제 있으면 잡아들이자”
중앙지검 3차장 “목욕탕 갔으면 땀이나 빼지 왜 딴소리”




경남 밀양경찰서 정모 경위가 직권남용과 모욕 등의 혐의로 박모 전 창원지검 밀양지청 검사(현 대구지검 서부지청 검사)를 경찰청에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13일 경찰 수뇌부와 검찰 고위 간부가 격한 말을 주고받으며 정면으로 충돌했다. 또 이 고소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청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이 이날 “관할권이 없다”며 이 사건을 지방의 관할 경찰서로 옮기라고 지휘하고 경찰이 이에 반발하면서 양측의 힘겨루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경찰청 내 목욕탕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은 문제 있는 경찰을 잡아들이고 경찰도 문제 있는 검찰을 잡아들이면 두 조직이 모두 깨끗해지지 않겠느냐. 그러면 국민이 오히려 이익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 청장은 “폐기물 투기는 통상 100t 이상이면 구속인데, 이번 사건은 5만 t이나 투기하고도 폐기물업체 대표가 처음엔 구속되지 않았고, 폐기물업체 대표가 선임한 지청장 출신 변호사에 대한 전관예우 의혹도 있다”며 수사 축소 등 검사의 부당지휘 여부에 대한 조사 방침도 밝혔다. 조 청장의 발언은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에 대해서도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힌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조 청장의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내가 그 정도 수준보다는 나을 것이다. 목욕탕에 갔으면 땀이나 빼면 되지, 왜 딴소리냐”며 조 청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윤 차장은 정 경위의 고소에 대해 “고소장이면 다 진실이냐. 인권의 ‘ㅇ’자나 아는 놈인지 모르겠다”며 “고소인이 역으로 무고로 고소를 당하는 일이 없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전날 검찰의 반박 브리핑을 문제 삼아 “개인 문제를 조직(검찰)에서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한 것에 대해 윤 차장은 “황당하다”며 “절도나 사기, 이런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이건 공무집행 과정상 문제여서 그런 사고방식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정 경위는 농지에 폐기물을 무단 투기한 밀양의 한 폐기물업체 대표를 수사하던 중 “박 검사가 폭언을 했고 부당하게 진술서를 쓰게 했다”고 주장한 내용의 고소장을 8일 조 청장에게 e메일로 보냈다. 조 청장은 사건을 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배당했고, 경찰은 필요하면 박 검사를 불러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검찰은 “박 검사가 정 경위에게 과잉수사 문제를 지적하면서 적절한 수사 지휘를 했을 뿐 폭언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경찰청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 이중희)는 이날 “형사소송법 제4조 제1항에 따라 범죄지나 피고소인 주거지를 관할하는 경찰관서로 이송해 수사하는 게 맞다”며 경찰청에 사건 이송을 지휘했다. 검찰은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주거지와 사건 발생지가 경남, 대구 등지이며 참고인들도 모두 밀양, 부산 등에 거주하고 있어 서울중앙지검에 관할권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조 청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재지휘 건의를 검토하는 등 반발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정 경위가 굳이 경찰청에 고소를 한 이유는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게 수사해 달라는 취지였는데 사건을 관할 경찰서로 이송하라는 건 사실상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재지휘 건의를 검토 중이고 14일 최종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의 폭언 여부가 일차적인 쟁점이지만 검경 수뇌부까지 나서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 내막에는 수사지휘권을 둘러싸고 계속돼 온 검경 갈등이 본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검경 간 수사지휘에 대한 패러다임을 ‘지휘 복종적’ 관계에서 ‘수사 동반자적’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는 “그동안 경찰은 검사에게서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쌓여 있었는데, 경찰이 그렇다면 국민은 (검찰로부터) 인간 대접도 못 받은 게 된다”며 “말도 함부로 해선 안 되는 시대가 된 만큼 검찰이 경찰을 잘 포용해야 갈등이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명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검찰과 경찰이 상호협력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규 준수가 우선”이라며 “경찰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이의 제기권’은 활용하지 않고 ‘검사 고소’라는 초강수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법집행 기관으로서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