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본관 실내설계 ‘아슬아슬’ 통과… 세종문화회관 ‘철제’ 공사 막아
굵직한 국제회의 때마다 오인욱 교수는 우리의 국격을 드러낼 수 있는 행사장 설계에 역점을 뒀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백건우 씨를 만나고 와서 얼마 있다 기회가 생겨 시장에게 말했어요. 시장이 한참 고민하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합디다. 대신 불에 타지 않는 목재용 칠감을 개발하라더군요.”
○ 김옥숙 여사 곁의 지관
청와대와의 인연도 깊습니다. 1990∼1991년 새로 지은 청와대 본관과 대통령관저의 실내설계를 맡았고, 전두환 대통령이 별장으로 썼던 청남대와 부산 광주 등 5개 도시의 ‘지방 청와대’도 그의 작품입니다. 그러다 보니 후일담도 적지 않습니다.
청와대 관저 설계를 하던 1990년의 일입니다. 설계 내용을 설명하라고 해서 청와대에 갔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 곁에는 도포를 입은 남성이 있었습니다. 오 교수는 거실 안에 작은 연못을 들이기를 바랐습니다. 실내 온도와 습도 조절에 효과가 있고 보기에도 좋다고 본 것이지요. 마침 관저 뒷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있어 그것을 끌어들이는 식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도포 입은 남성이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그 남성은 실내에 물이 들어오면 안 되는 까닭을 옛 정치깡패 이정재 같이 불운한 말로를 맞은 사람들의 집을 예로 들며 이야기했습니다.
“대통령부인이 그런 말을 듣고 찬성했겠어요? 알고 보니 그 도포 입은 사람은 지관이었어요.”
청와대 본관 1층 정문을 들어서면 양쪽으로 4개씩 기둥이 서있습니다. 우리 전통 건물의 회랑(回廊)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당시 청와대 측에서는 공간이 좁아 보인다며 없애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골조공사가 다 끝나 철골을 심어놓은 기둥을 없애기란 무리였습니다. 2주 뒤 마감 브리핑을 하러 들어가서 여전히 기둥이 그대로 있는 본관 모형을 꺼냈습니다. 노재봉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물었습니다. “그게(기둥) 의미가 있어요?” 아이디어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순간, 오 교수는 엉겁결에 “네”라고 답했습니다. “8개 기둥은 팔도강산을 뜻합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지금도 그 기둥들은 남아있습니다. 오 교수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지만요.
오 교수는 1980년대 후반 ‘5공 청산’이 시작되면서 청남대가 아방궁 같다고 소문났을 때 착잡했다고 합니다. 수도꼭지조차 순금이고 수입 가구 일색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정작 수도꼭지는 금도금한 것이었고, 가구는 오 교수가 디자인해 동명가구라는 업체에 제작을 맡겼다고 합니다. 그는 “20년 전에 지은 청와대 본관과 관저 내부의 주요 부분을 아직까지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 실내건축은 몸의 장기(臟器)
오 교수는 “핵안보정상회의 행사장의 콘셉트는 평화”라고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평화는 이른 아침 집 뒤 산야(山野)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고즈넉한 분위기입니다. 안개가 옅게 끼고 공기는 맑습니다. 앞마당에서는 닭들이 모이를 쪼고, 개는 늘어지게 하품을 합니다. 그래서 정상들이 휴식을 취하는 라운지 공간을 마루 영역과 마당 영역으로 구획했습니다. 잔칫집에서 툇마루에 걸터앉거나 마당 멍석에 앉는 것처럼 정상들이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벽면 곳곳에는 평화로운 자연풍경을 그래픽으로 처리하고, 53개의 조각보를 이어 붙여 놓을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보자기를 드러내면서, 평화를 열망하는 53개국 정상들의 마음을 조각보에 담아내겠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우리 것을 나타내는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드러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