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이흥덕. 아트블루 제공
예전에 지하철에서 저는 기초화장부터 색조화장까지 하던 ‘화장녀’를 본 적도 있어요. 그 여자는 지하철 좌석에 거울을 세워놓고 쭈그리고 앉아서 마스카라를 칠하기까지 하던걸요. 화장이 끝나자 일어서서 출입문 유리를 전신거울로 삼아 빗을 꺼내 머리도 빗고 뒤로 물러났다 다가왔다 하며 옷매무새를 꼼꼼히 살폈는데, 자신을 쳐다보는 남들의 이목은 전혀 살피지 않는 ‘얼굴이 두꺼운’ 여자였지요.
지하철에서는 가끔 다툼이 생기는데, 노약자석이 있는 칸은 패권다툼의 주무대입니다.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모종의 암투가 벌어지곤 합니다. 암투로만 끝나면 다행이지만 실제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지하철 막말남, 막말녀, 폭행남, 선빵녀 등 지하세계에서 폭력이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아기를 만졌다가, 실수로 구두를 밟았다가, 공연히 말참견을 했다가는 어떤 수모와 폭력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저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귀머거리 30분, 벙어리 30분은 기본입니다. 그래선지 나서서 중재를 하는 승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몰래 동영상을 찍어 나중에 인터넷에 올려 댓글로 망신을 주는 사이버 복수나 하면 다행이죠.
이 그림은 한 소녀가 늑대에게 쫓기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비상구는 반대쪽이군요. 군중 속의 말풍선엔 ‘말없음표’만 계속 이어지고, 사람들은 불온한 침묵으로 폭력적 사태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위선적이며 다중인격적인 표정 속에서 분노하고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도시인들의 저 섬뜩한 눈빛을 좀 보세요. 이 그림이야말로 도시 이면의 폭력적 현실을 불안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초상이 아닐는지요. 쫓기고 있으나 비상구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를 절묘한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나요?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