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아이에게… 스스로 배우는 법을… 단계별로 가르쳐야
다산이 오늘날 과도한 선행학습 분위기를 본다면 분명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다산은 아동이 너무 어리면 글을 읽어도 의미를 모른다면서 아동기의 목표는 공부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스스로 터득하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DB
Q. 가진 자만 배울 수 있나
“교육은 평등하다. 못 가진 자도 배워 높은 지적 수준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다산의 형인 정약전(丁若銓·1758∼1816)은 1807년 흑산도에서 ‘사촌서실(沙村書室)’이란 서당을 열어 아동을 가르치면서 다산에게 격려의 말을 부탁했다. 다산은 이렇게 답했다.
다산은 이처럼 교육을 누에 치는 것에 비유하면서 작은 곳에서 키운 누에나 큰 곳에서 키운 누에가 차이가 없듯 사람도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배우나 좋은 곳에서 배우나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흑산도에서도 잘만 배운다면 중국에서 배운 것과 다르지 않으니 누구나 열심히 배우라는 것이다.
다산의 이런 교육관은 당시로선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한양과 그 주변 지역의 양반에게만 교육이 집중되던 시기에 지방, 그것도 전라도 섬 지역처럼 극단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서민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그곳 아이들도 공부에 열의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Q.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획득하는 능력과 방법을 가르쳐라.”
1812년 다산의 제자 정수칠(丁修七)은 아들이 공부할 나이가 되자 다산에게 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물었다. 다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다산의 판단은 당시 아동의 교육 여건에 대한 분석에 바탕을 두었다. 다산은 아동이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 12세에서 14세까지 3년간이며 그때도 300일 정도만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고 봤다. 아동이 너무 어리면 글을 읽어도 의미를 모르고, 사춘기가 되면 방황하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으며, 봄가을에는 날씨가 좋아 놀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 하지만 다산은 학습시간의 부족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놀이와 방황을 아동이 크면서 겪는 당연한 삶의 과정으로 봤기 때문이다. 또 다산은 아동기 삶의 목표를 공부에만 두지 않았다. 그 대신 이 기간에 아동이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터득하게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공부에 흥미 갖게 하려면
“새 교육법과 새 교재를 개발하라.”
다산은 “법도를 따라야 지식의 길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는가?”(‘교치설·敎穉說’)라며 당시 통용되는 교육법과 교재가 지식을 늘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학생을 혼동에 빠지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며 효과적인 교육법을 찾아내 적용했고 ‘아학편(兒學編)’ ‘소학주관(小學珠串)’ ‘아언각비(雅言覺非)’ 등 교재도 새로 만들었다.
다산은 아동의 학습능력에 따라 적절한 단계별 교육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습능력만 있다면 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논어’나 ‘시경’처럼 어려운 내용을 가르쳐도 좋다고 봤다. 체계를 세우고 흥미를 유발해 교육한다면 내용이 어려워도 학생들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안대회 교수
다산은 아이가 공부에 꾸준히 흥미를 갖도록 하려면 새로운 교재로 바꾸고 교육법도 다양화해야 한다고 봤다. 그가 “모든 과목을 나누어 가르치되 간략하게 하는 것이 옳다”(‘경세유표’)고 말한 것도 아동으로 하여금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ahn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