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soojin@donga.com
난 탐미주의자인 것 같다. 아니 탐미주의자이고 싶다. 예쁘고 멋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이 좋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못나고 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내 기준으로는 예쁘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다. 어릴 적부터 싹수가 아주 노란 아이였음에도 부모님을 비롯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하겠다는 나의 진로를 반대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미술관의 작품과 달리 패션은 그 예쁘고 멋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에 감고 걸치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만둘 수 없을 정도로 중독돼 나에게 패션은 공기이자 물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솔직히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지만 패션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기에 패션은 예쁘고 멋있고 아름답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패션을 포기하지 않을 것!
내가 왜 그토록 패션을 좋아하는지 오랜만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얄미운 나비처럼, 얄궂은 미꾸라지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잡으면 금세 놓쳐버리고 마는 그 움직임이 좋아서일지도 모르겠다. 패션은 세상의 앙증맞은 축소판 같다.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숨 가쁘게 변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개연성 없어 보이던 남자들의 하이힐과 스커트 착용은 몇몇 패션디자이너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무대 위 연예인을 통해 대중에게도 익숙해졌다. 남자들의 피부 관리와 메이크업, 그리고 성형수술은 이제 필요에 따라 당연하다고 인식된다. 우리의 생활환경 그 자체뿐만 아니라 한없이 보수적일 거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의식마저 빠르게 변화를 좇는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순간도 정체하지 않고 움직이는 이 역동적인 흐름이.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의 흐름에 호기심 잃지 않기!
그리고 나의 마지막 버킷리스트.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아름다운 이유이자 슬픈 사연인 노화, 그리고 사라짐. 아니 속도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하다.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과 그때그때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여러 상황과 함께 편집해서 사용하는 상대적인 시간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사람.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상상력의 에너지로 가득하기에 더욱더 아름다운 우리. 다른 존재로 태어나 사라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없어 비교할 길은 막막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인생 한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뿌듯할 정도이니 내게 주어진 아름다운 시간을 끝까지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눈감기 전에 내 인생의 독후감을 쓰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아름답다’라는 표현보다 더 아름다운 표현 찾아내기!
하상백 패션디자이너·패션스타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