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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홍권희]KT 항로 바꿀 ‘독수리 5형제’

입력 | 2012-03-22 03:00:00


홍권희 논설위원

이석채 KT 회장이 19일 ‘젊은 친구들’이라며 언론에 소개한 KT 계열사 대표들은 평균 39세다. 동영상검색 전문업체인 엔써즈의 김길연 대표(36), 한류 영상콘텐츠를 해외에 공급할 유스트림의 김진식 대표(43) 등이다. 무기와 복장도 다르고 성격과 역할도 제각각인 만화영화 속의 ‘독수리 5형제’를 빼닮았다.

평균 39세 대표들이 콘텐츠 유통

5개 회사와 그 대표들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통신회사 KT와는 얼핏 연결고리가 약해 보인다. 하지만 이 회장은 과거 공식행사 때 배석시켰던 기업부문 개인부문 등의 50대 사장단 대신에 이들을 가까이 앉히고 한 사람씩 소개했다. ‘KT의 미래를 짊어질 분들’이라는 찬사도 썼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 회장이 내세운 ‘통신을 넘어 글로벌 미디어 유통기업으로 간다’는 비전을 직접 추진할 머리이자 동시에 발이라는 것이다.

60대 후반의 이 회장이 스무 살 이상 어린 벤처기업 대표들의 역량을 알아본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 회장은 “영화제작 계열사 싸이더스FNH를 끌고 가기 어려워 처분할 생각도 했다. 어느 날 이한대 KT 과장이 찾아와 ‘이 회사를 이렇게 키울 수 있다’고 보고하기에 임원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최근 대표로 발탁했다”고 전했다. 신임 이 대표는 35세로 독수리 5형제의 막내 격이다.

KT는 이들과 함께 영화와 동영상 같은 한류 콘텐츠를 제작해 해외에 팔 계획이다. 스마트폰 등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거래하려면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여러 기술이 필요하다. 독수리 5형제가 맡을 일들이다. 30년 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출범해 전화 2000만 회선 보급, 이동통신, 초고속인터넷 등으로 시대별 수요에 맞춰 유무선 통신사업에 매달렸던 KT로서는 대변신이다. 물론 새 사업도 KT의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다.

‘탈(脫)통신’은 KT가 개발한 구호도 아니고 KT의 변신이 빨랐던 것도 아니다. 세계 주요 텔코(telco·통신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통신 이외에 콘텐츠 유통 같은 사업을 구축했다. 국내에서 SK텔레콤은 헬스케어와 스마트러닝 등 신성장사업을 구축 중이며 최근에는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현재는 4세대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에 전력투구 중이지만 2년 전부터 탈통신과 이를 위한 인프라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강조했다. 회사 체력이 회복되면 바로 새 사업에 나설 것 같다.

묘하게도 국내 통신기업들이 탈통신을 한다니까 비로소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대기업다워지는 것 같다. 통신 3사가 거의 동시에 비슷한 서비스에 뛰어들어 제한된 국내 고객을 돈으로 모셔가는 행태를 보며 ‘대기업이 저렇게 해서 유지가 될까’ 하는 의문을 품은 사람이 많았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를 가진 KT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이동통신 요금에까지 개입하는 과잉규제도 KT의 변신을 재촉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간섭 없어야 글로벌化 가능

이 회장은 첫 임기 3년간 KT와 KTF를 합병해 유무선통합 서비스 능력을 키웠고 스마트폰을 도입해 국내 ICT업계를 각성시켰다. 채용과 보상 체계도 획기적으로 개선해 2002년 민영화 후에도 공기업 타성을 버리지 못하던 임직원들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KT나 포스코를 민영기업과 공기업의 중간쯤으로 본다. 앞으로는 국가 기간통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온전히 민간영역으로 취급해야 이 분야의 경쟁력도 커질 수 있다. KT의 변신과 도약은 정치권이 ‘민영화 기업의 인사와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가능할 것이다. 정 애널리스트는 “성장부문의 독립경영을 위해 KT가 지주회사로 재편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