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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시침 분침을 가장자리로… 디자인 혁명

입력 | 2012-03-23 03:00:00

해리 윈스턴 시계 ‘오퍼스 12’ 만든 에마뉘엘 부셰 씨




 

‘시곗바늘이 꼭 필요할까?’

스위스의 유명한 워치메이커 에마뉘엘 부셰 씨(사진)는 우주와 관련한 잡지를 뒤적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잡지에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칼럼이 실려 있었다. 해리 윈스턴과 손잡고 ‘오퍼스 12’ 제작을 맡고 있던 그의 머릿속에는 코페르니쿠스 혁명과도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시곗바늘이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향하지 않도록 의식을 전환시켜 보고 싶었던 것이다.

10일(현지 시간) 바젤에서 만난 부셰 씨는 “시침 하나, 분침 하나로 표현하는 시계 제조의 틀에서 벗어나 시침 12개, 분침 12개로 보이지 않는 시간의 움직임과 그 순간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워치메이커는 시계의 디자인과 개발, 제품 산업화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오퍼스 12로 어떻게 시간을 볼까. 아라비아숫자가 적혀 있어야 할 시계판 가장자리에 12개의 짧은 바늘과 긴 바늘 한 쌍이 나열돼 있다. 이 바늘이 뒤집어지면 뒷면의 파란색이 나타난다. 오후 4시면 숫자 4 자리의 짧은 바늘이 파란색, 12 자리의 긴 바늘이 파란색이 된다. 4시 3분이면? 시계판 안에 있는 5분 이내 분 단위를 알 수 있는 계기반 같은 것이 있다. 거기에 3분이 표시돼 있다. 그러다 5분이 되면 숫자 1 위치의 긴 바늘이 뒤집히면서 파란색이 된다.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모든 바늘이 도미노처럼 순서대로 뒤집히는 한 차례 ‘쇼’가 벌어진다. 뻐꾸기시계를 처음 본 어린이처럼 깜짝 놀라게 된다.

일반 시계와 달리 시침과 분침이 쌍으로 12개씩 가장자리에 달려 있는 오퍼스12. 사진 속 시간은 10시 13분이다. 해리 윈스턴 제공

그는 “바늘이 뒤집히는 애니메이션에 필요한 에너지(동력)와 일반 무브먼트 운행(시간이 가는 것)에 필요한 동력을 각각 나눠서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문제가 제작의 난관이었다”며 “이 두 개의 메커니즘에 각각의 배럴(태엽에서 나오는 동력을 전달하는 것)을 분리했지만 크라운 하나로 각각에 모든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인인 부셰 씨는 시계 장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시계를 손목 위의 작은 ‘우주’로 여겨왔다고 한다. 프랑스 국립박물관에서 시계 수리 등을 담당하다 1999년 예술과 기술력을 결합한 시계를 만들고 싶어 스위스로 이동했다. 독립 워치메이커로서 디자인과 제품 생산까지 모두 혼자하기 어렵기에 그는 2008년에 ‘손타고라’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부셰 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담는 시계를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주라는 주제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바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