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섬 굽어보며 걷는 물안개길, 코끝에 봄내음 스치고…
임실 옥정호 물안개길에서 바라본 붕어섬. 사방천지가 아슴아슴 아득하다. 한낮의 뿌연 봄기운이 몽환적이다. 저 멀리 붕어섬 붉은 황토밭에 기름이 자르르하고, 옥정호수의 푸른 물은 봄빛에 풀려 나른하다. 그렇다. ‘물안개처럼/몇 겹의 인연이라는 것도/아주 쉽게 부서지더라’(류시화 시인) 논두렁 밭두렁 마른 풀 타는 냄새.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두엄자리 김. 하늘하늘 연초록 보리싹. 옥정호 아래 섬진강물 수런거리는 소리. 가슴이 뻐근하다. 임실=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잘 가렴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빗속을 어깨 겯고 너희는 떠나
뒤돌아보지 말고 살아가거라
-김사인의 ‘화양연화(花樣年華)’에서
화양연화(花樣年華).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그 좋은 날들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처럼, 그렇게 아련하게 사라진다. 도대체 그 좋았던 시절의 끈은 어느 순간 놓쳐버렸을까. 언제 손아귀를 스르르 새나갔을까.
옥정호(玉井湖)는 섬진강 상류에 있는 인공호수다. 전북 임실군 운암면에서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 있다. 정읍시와 김제시에 수돗물을 공급해 주는가 하면, 호남평야의 목을 축여준다. 수력발전으로 전기도 만든다. 물을 가득 담으면 4억3000만 t이나 된다.
진안 마이산 데미샘에서 시작된 섬진 강물이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서 막힌다. 그 댐이 1965년에 만든 섬진강다목적댐이다. 이로 인해 1926년 일제강점기 때 세운 운암댐은 그 기능을 잃었다.
옥정호는 새벽 물안개가 으뜸이다. 사우나 수증기처럼 자욱하다. 산허리를 감싸고도는 구름 띠는 덤이다. 몽환적이다. 그 사이로 언뜻언뜻 푸른 호수물이 보인다. 호수 가운데엔 메뚜기 이마빡만 한 ‘외앗날 섬’이 있다. 안팎으로 구불구불 영락없는 금붕어 모양이다. 카메라맨들은 그냥 ‘붕어섬’이라고 부른다. 사진작가들은 대부분 국사봉 전망대에서 앵글을 맞춘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물안개처럼/몇 겹의 인연이라는 것도/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류시화 ‘물안개’
58개의 이정표가 곳곳에 서 있다. ‘51번 육모정, 23번 용동마을’식으로 번호만 알면 어느 지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산과 호수, 마을이 있는 듯 없는 듯 어우러졌다. 하늘이 아슴아슴 아득하다. 논두렁 밭두렁엔 어린 새싹들이 우우우 올라온다. 젖먹이들 잇몸에 돋는 하얀 젖니 같다. 여기저기 논두렁 마른 풀 타는 냄새가 구수하다. 늙은 농부들은 농사채비에 부산하다. 구수한 거름냄새. 봄바람이 마른 덤불을 머리째 끌고 위로 솟구쳤다가, 핑그르르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옥정저수지는 맑고 푸르다. 눈물 가득한 ‘우멍 눈’이다. 산과 산 사이 움펑한 눈물샘이다. 참고 기다리다 마침내 터져버리는 설움보따리이다. 저수지는 과묵하다. 촐랑대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크고 작은 도랑물 소리 모두 끌어안고, 가슴속 저 밑바닥에 홍어처럼 푹푹 삭힌다. 그러다가 ‘장마철 수문 열면 탱탱 불은 슬픔들 터져 나온다.’(김평엽 ‘금광 저수지’)
붕어섬에는 2, 3가구 주민이 들락거리며 산다. 밭 8, 9두락에 고추 배추 무 농사를 짓는다. 보통 땐 호수를 건너 가까운 동네에서 살다가 농사철엔 한동안 머문다. 급한 볼일이 있거나 장보러 뭍으로 나올 땐 작은 배를 이용한다. 붕어섬은 작은 왕국이다.
국사봉 전망대에서는 붕어섬과 옥정호가 한눈에 잘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서 찍는 사진은 어슷비슷하다. 구도가 거의 똑같다. 다른 앵글을 잡으려면 국사봉(475m)을 거쳐 오봉산 정상(513.2m)으로 가야 한다. 주차장∼(0.59km)∼국사봉∼(1.52km)∼오봉산. 오봉산에선 붕어섬 꼬리가 정면으로 보인다. 꼬리가 옆에서 보였던 전망대 앵글과 완전히 다르다.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사이로 붕어꼬리가 퍼더덕! 팔짝 뛰어오른다. 정녕코 봄이로소이다. 붕어꼬리가 슬쩍 호수 밖으로 삐져나온다. 파천황이다.
■ 임실의 치즈 맛, 그냥 갈 수 없잖아
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任實)은 ‘씨앗이 튼실하게 영그는 동네’라는 뜻. 한국 치즈의 발상지가 바로 전북 임실이다. 1967년 임실성당의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처음 생산했다. 서양에서 산양 2마리를 들여와 그 젖으로 시작했다. 지 신부는 임실치즈를 성공시킨 뒤 관련 사업을 모두 주민들에게 넘겼다. 이러다보니 상표권 등록이 안 돼 전국 곳곳에 짝퉁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웬만한 피자엔 ‘임실치즈’라는 말이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다.
임실에 가면 자연치즈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임실N치즈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임실치즈테마파크(www.cheesepark.kr 063-643-2300), 모차렐라치즈의 늘려주는(스트레칭) 작업을 할 수 있는 임실치즈마을(http://cheese.invil.org 063-643-3700)이 그곳이다. 임실치즈피자마을(www.cheesecook.co.kr 063-642-2700), 아펜젤치즈체험장(www.appenzell.co.kr 063-644-2009)도 있다. 경운기 타기, 소달구지 타기, 송아지 우유 주기, 풀썰매 타기 등도 곁들여진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