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2, 신철. 아트블루 제공
옛이야기를 하다 보니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단발머리 문학소녀시절이 아른아른 그리움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며칠 전에 이사를 하느라 옛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여고시절에 제가 보냈던 엽서와 편지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며 조만간 따로 만나 전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문학소녀였던 우리는 친구들과 편지나 엽서를 참으로 많이 주고받았어요.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감성을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첫사랑과 재회할 사람처럼 설레기도 합니다. 사실 얼마나 유치할까요. 하지만 얼마나 사랑스럽고 눈물겨운 내 모습이 거기에 있을까요. 그 옛날의 나를 만날 수 있게 제 편지를 보관해준 친구가 정말 고맙게 여겨졌지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편지 얘기하니까 생각이 나. 예전에 어떤 학생이 몰래 늘 내게 편지를 주었지. 아침에 출근하면 책상 위에는 항상 그 친구의 편지가 놓여있었어. 봉투도 편지지도 매번 다른 그 편지. 그 아이는 편지지에 일련번호를 매겨가며 매일 그 편지에 하루하루 자신의 이야기나 감상을 적어놓았어. 나는 그걸 소중하게 차례대로 보관했었지. 세월이 지나자 아주 묵직하게 쌓였지.”
저는 생각했어요. 그럼 그렇지. 집이 박물관이 아닌 이상 그런 걸 수십 년간 보관하는 게 보통일은 아니지.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더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졸업을 하고 한참 후에 결혼한다는 연락을 해왔어. 꼭 가보려고 했는데 일이 있어서 못 가보았지. 그 후에 그 제자와 남편을 만났어.”
그런데 선생님은 그때 만나서 결혼선물로 신랑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 제자가 소녀시절에 보낸 편지를 모아 예쁘게 리본으로 묶은 상자를 그녀의 남편에게 돌려주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편지들에는 한 소녀의 눈과 감성을 여과한, 그녀만의 인생과 세상과 감정이 오롯이 들어 있었을 겁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보게. 자네의 아내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 안에 다 들어있다네.”
집에 돌아오니 선생님으로부터 나태주 시인의 ‘선물’이란 시를 인용하며 제자들과의 행복한 만남에 감사하다는 e메일이 당도해 있었습니다. 이 시구가 오래 남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지구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지구에 와서 만난 당신,
당신이 우선적으로 가장 좋으신 선물입니다.’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