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XKR 컨버터블 in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한 장면.
미국 뉴욕의 한 식당. 가게 문을 닫으려 할 때 주인 제레미(주드 로 분)에게 실연의 아픔을 안은 엘리자베스(노라 존스 분)가 찾아옵니다. 제레미는 위로 대신 그녀에게 팔고 남은 블루베리파이를 권합니다. 인기가 많은 치즈케이크와 애플파이는 장사가 끝날 때가 되면 늘 동이 나지만 블루베리파이는 유독 잘 팔리지 않는 천덕꾸러기입니다.
엘리자베스는 달콤 씁쓸한 블루베리파이와 함께 조금씩 미련을 삼켜갑니다. 이 파이는 두 남녀를 잇는 매개체. 하지만 언제 바스러질까 위태로운 고리입니다. 왕자웨이 감독의 주특기인 화려한 색채가 그려내는 블루베리파이는 차갑도록 푸르기만 합니다.
레슬리의 차는 영국 재규어의 ‘XKR 컨버터블’. 18초 만에 지붕을 열어젖히는 아름다운 스포츠카입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언 칼럼의 대표작이기도 하죠. 알루미늄 재질의 매끈한 차체에 최고출력 420마력의 4.2L급 대형 엔진을 얹었습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5.3초 만에 도달하는 성능을 발휘합니다. 2006년 영국 BBC의 ‘올해의 차’에도 선정된 이 차가 단종되기 전 한국에서의 판매 가격은 1억6700만 원. 레슬리가 빌린 돈은 2200달러(약 25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차는 결국 엘리자베스에게 넘어갑니다. 레슬리는 약속대로 차를 주는 대신 자신을 태워달라고 합니다. 행선지는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밤과 낮이 교차하는 굽이진 도로의 어지러운 모습이 극중 인물들의 복잡한 심정을 표현합니다.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네바다의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달려갑니다.
도착한 일행은 비보를 접합니다. 레슬리의 아버지가 숨을 거둔 것입니다. 재규어는 결국 유품이 되었습니다. 레슬리는 엘리자베스에게 차를 돌려달라고 합니다. 사실은 돈을 잃지 않고 오히려 땄다면서요. 그저 함께 올 친구가 필요했을 뿐이었던 거죠. 엘리자베스는 레슬리가 사준 중고차를 타고 다시 뉴욕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재회. 제레미는 돌아온 엘리자베스에게 다시 블루베리파이를 내놓습니다. 여전히 잘 팔리지 않는 블루베리파이를 그녀를 위해 계속 준비해 놓았던 겁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