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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민동용]‘뭔가 해본 그들’

입력 | 2012-03-26 03:00:00


“구겨진 종이가 멀리 날아갑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 경기에 출전한 이승훈 선수가 네덜란드 선수를 한 바퀴 넘게 앞설 무렵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이렇게 외쳤다. 이승훈은 원래 쇼트트랙 선수였다.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지자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다. 주위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1만 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살면서 실패를 맛본 적 없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달 제84회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탄 메릴 스트립도 예외는 아니다. 2년 전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그를 두고 당시 영화제 사회를 맡았던 코미디언 스티브 마틴이 말했다. “그는 오스카 후보에 가장 많이(당시까지 16회) 올랐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당시까지 14회) 떨어졌습니다.” 미국 프로농구 NBA에서 통산 3만 점 이상을 득점한 4명 중 하나인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1만2000번 넘게 슛을 성공시키지 못했고, 300경기 넘게 졌다.

▷6년 전 정치부 시절에 알게 된 언론사 출신 한 선배와 지난주 통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전남에서 민주통합당의 총선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직후였다. 그는 4년 전부터 출마 지역에서 터를 닦기 위해 애를 썼다. 지역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이려 했고, 틈틈이 서울을 오가며 ‘여의도 정치’의 흐름을 좇는 데도 뒤처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 어쭙잖게 힘내시라고는 했지만 통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목소리는 밝아지지 않았다.

▷전국 246개 선거구에서 모두 927명이 4·11총선 후보로 등록했다. 이보다 약간 많은 수의, 선량(選良)을 꿈꾸던 사람들이 공천에서 탈락의 쓴잔을 들었고 다음 달 11일이 지나면 여기에서 681명의 패배자가 나온다. ‘거듭된 실패가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식의 위로가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나라에도 팬이 적지 않은 일본의 만화가 아다치 미쓰루(あだち充)는 1980년대 히트작 ‘터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 않으면 구겨지지도 않는다. 굳은 신념에서든, 허튼 욕망에서든 어쨌든 뭔가는 해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민동용 주말섹션 O2팀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