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70%가 한자어… 국어 정확히 구사하려면 한자 공부해야”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73)는 성균관대에서 국어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대만사범대에서 계림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을 활자가 아닌 육필로 썼다. 필사하는 데만 몇 달은 걸릴 분량이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뜬금없는 우려가 아니었다. 우선 대륙(중국)과 교류가 확대되면서 대만 내에서도 간화자(簡化字)의 사용이 늘어났다. 현재 중국 대륙에서 사용되고 있는 간소화된 한자다. 중국 공산당은 혁명 이후 간화자를 만들어 보급하면서 원래 한자, 그러니까 한자 정체자(正體字)를 번체자(繁體字)로 몰았다. 번거롭고 복잡한 문자체라는 뜻이다.
마 총통은 이후에도 “대만이 중화문화 수호자의 역할을 계속하기 위해서 모든 정부 문건과 웹사이트를 정체자 위주로 운영해 전 세계가 한자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교수는 오래전부터 중국, 대만 학회 행사에서 “간화자는 중국인들만 아는 중국 문자일 뿐이지 한자가 아니다. 우리는 정통 한자를 한민족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고 주장했다.
매우 자극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도 아니다. 대만 학자들도 “한자의 정자를 알려면 한국에 가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은 한자 문화권에서 정통 한자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다. 성리학이 중국에서 나왔지만 한국이 그 ‘본래 명맥’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것처럼….
게다가 한자는 동이족(東夷族)이 만든 문자다. 한민족이 바로 동이족의 후예 아닌가? 그러니 한국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얘기가 나와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는 게 진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나 진 교수의 목표는 유네스코가 아니다. 일차적인 목표는 한자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으로 명실상부하게 ‘복권’되는 것이고, 그 다음은 한민족이 한자 경쟁력을 통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의 문화중심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1998년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를 만들어 ‘한자 교육 운동가’로 나선 것도 그런 필생의 목표 때문이다. 15년을 이리저리 뛰었지만 한글 전용론의 벽은 높았다.
기자도 한맹(漢盲·한자 문맹) 수준은 아니지만, 한자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한자가 가진 표의문자(表意文字) 특유의 의미 함축, 그리고 의미 확장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국가적으로 조금만 신경 쓰면 ‘거의 공짜로 먹을 수 있는’ 문자라고 생각한다.
내친김에 21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사무실에서 진 교수를 만나봤다.
―그런데 교수님 이력을 보니 원래 국어를 전공하셨던데 어떻게 한자 교육 운동가가 되셨습니까.
“국어를 연구하다 중세 국어, 그러니까 훈민정음 이전으로 올라가게 됐습니다. 불행하게도 훈민정음 이전의 우리말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계림유사밖에 없습니다. 송나라 사람이 쓴 계림유사가 고려 500년간 우리말을 연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보전(寶典)인 셈입니다. 우리가 문화민족이라고 자부하지만 고려가 아주 오래된 고대국가도 아니고 그 시대의 자료가 없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전에는 손목이 채록한 단어가 360개라고 돼 있습니다.
“우리 연구의 취약점은 상대(上代)로 올라갈수록 당시 중국어와 비교해야 하는데 중국어가 안 돼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어학 연구자들은 거꾸로 국어가 안 돼 있고…. 제가 중국어학을 공부한 것도 국어를 비교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계림유사만 해도 당시 송나라 발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날(漢捺)도 현대의 한자음이 아니라 북송시대의 한자음입니다. 중국의 문자학, 성운학(聲韻學), 훈고학을 하지 않으면 송나라 때의 음(音)과 운(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연구는 모두 청판본(청나라 때 판본)을 기초로 했는데 오류가 많았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명판본(명나라 때 판본)을 찾아내 361개로 바로잡은 겁니다.”
―국어 연구를 위해서도 한자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래도 21세기에, 그것도 초등학생 때부터 한자 교육을 해야 한다는 건 금방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입니다. 요즘 중국을 G2라고 부를 만큼 부상하니까 중국어를 배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어 학습은 차후의 문제이고, 국어 생활을 좀 더 정확히 하기 위해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7년째 삼성그룹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데 석사는 물론이고 박사과정까지 마친 사람이 150명이나 됩니다. 제가 강연 중에 ‘뇌졸증’이 맞느냐, ‘뇌졸중(腦卒中)’이 맞느냐고 물으면 85%가 뇌졸증이라고 합니다. 가운데 중(中) 자를 쓴다는 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어느 방송에선 ‘뇌졸증’이라고 큼지막한 자막까지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 졸업자의 문해력(文解力)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라고 합니다. 조갑제 씨 표현을 빌리면 ‘대졸 문맹자’와 ‘배운 무식자’를 양산하고 있는 셈입니다. 70%가 한자어인데 뜻도 모르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글학회 소속 학자들은 한자어가 53%, 우리말이 47%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도 어려운 한자를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조사를 해보면 교사의 77.3%, 학부모의 89.1%가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한자 교육에 혁명을 일으킨 이시이 이사오(石井勳) 박사는 유치원에서 논어를 가르쳤는데 애들이 줄줄 외웠다고 합니다. 한자는 도구 교육인데, 옛날 서당식으로 무조건 외우게만 하니까 어렵다고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보통 ‘새 조(鳥)’가 ‘아홉 구(九)’보다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만 3세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새의 그림을 그려가며 실험했더니 ‘새 조(鳥)’를 먼저 익혔습니다.” 이시이 박사는 중고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한자가 일본 문화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치원 학생들을 상대로 30년 동안 학습 실험을 한 끝에 △한자는 아이를 천재로 만든다 △한자는 그림이고, 얼굴이 있다 △한자가 어렵다는 것은 배울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자가 어렵다는 건 학습지도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까.
“세계 언어 가운데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무릎을 치면서 배울 수 있는 문자는 한자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도 방법을 만드는 데 실패했습니다. 지금도 구태의연하게 10번, 20번씩 써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지능을 저하시킵니다. 한자의 기본은 300자 정도입니다. 활의 모양을 본떠 ‘활 궁(弓)’ 자를 만들었듯이 자형(字形)이 왜 이렇게 됐는지 보여준 뒤 그 다음엔 화학기호식으로 가르치면 됩니다. 나무 목(木), 수풀 림(林), 빽빽한 수풀 삼(森)처럼 말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50자를 가르치는 건 아무 부담도 안 됩니다. 그리고 2학년에 100자를 가르치는 식으로 점점 올라가면 6학년까지 900자를 익힐 수 있습니다. 정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게 한자입니다. 또 그렇게 900자, 1500자를 알면 국어 성적만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한자는 왼쪽 뇌를 발달시키기 때문에 성적이 전체적으로 올라간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주도의 한 교장선생님이 컴퓨터반과 한자반을 만든 뒤 실험을 했는데 한자반의 성적이 전체적으로 향상됐습니다.”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한자가 동이족이 만든 문자라고 역설하시면서 ‘극단적 민족주의’라는 오해도 받으셨죠.
“한자가 동이족이 참여해 만든 문자라는 건 제 주장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고증된 이야기입니다. 베이징대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때 ‘한자의 기원과 동이족’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베이징대 교수들이 열렬히 박수를 쳤습니다. 관영 런민(人民)일보도 보도를 했습니다만, 진실 앞에서는 그 사람들도 양심을 보인 것입니다. 자료를 어떻게 찾았느냐고 묻기에 ‘바로 너희 나라 갑골문에 나온다’고 대답했습니다. ‘창힐연구회’ 회장도 장문의 글을 발표해 제 말이 맞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창힐연구회장이 한자를 만든 창힐은 동이족이고, 공자도 동이족이라고 한 겁니다.” 창힐(蒼(힐,갈))은 중국 고대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으로, 새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한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눈이 네 개여서 ‘네눈박이 창힐’로 불린다.
―일본의 다케다 마사야(武田雅哉)가 쓴 ‘창힐의 향연’이라는 책을 보면 16세기 서양에서는 중국의 한자를 접한 뒤 ‘바벨탑 이후 잃어버린 인류의 보편문자가 아닐까’ 하며 놀라워했다는 내용이 소개돼 있습니다. 말은 달라도 문자는 하나여서 필기로 하면 모두 통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던 모양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만 해도 말은 달라도 문자로는 서로 통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한자가 오늘날에도 세 나라 사이에서 ‘소통의 보루’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5일 오후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한자교육 촉구 천만인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참, 4월 17일 광화문 현판을 종전대로 한자로 할 것인가, 아니면 한글로 바꿀 것인가를 놓고 토론회가 열리는데 ‘한자 대표’로 나선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한글학회 사람들은 ‘光化門’이 우리글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박합니다. 당신들 이름은 대부분 한자로 지어졌을 텐데 그럼 부모들이 우리말이 아닌 중국어로 이름을 지어줬다는 말이냐고요.”
사실 ‘김창혁 전문기자의 세상이야기’에서 ‘김창혁’은 기자의 이름이 아니다. 부친이 지어주신 이름은 ‘金昌赫’이었다.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