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혈압을 앓던 김상현(가명·72) 씨는 지난달 뱃속에서 맥박이 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세브란스병원 혈관치료센터를 찾았다. 별일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병원에 갔는데 이 병원 최동훈 교수(심장내과)는 “아주 복잡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동료 3명을 더 불렀다. 김 씨의 질환은 신장 아래로 흐르는 대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복부 대동맥류. 대동맥 지름이 5.9cm로 정상 핏줄보다 배 이상 굵었다. 대동맥 지름이 6cm를 넘으면 1년 안에 터질 확률이 50%, 혈관이 파열되면 수술을 받더라도 살아날 확률이 10∼20%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고 김 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세브란스병원 혈관센터장인 최동훈 심장내과 교수가 의료진 앞에서 심장질환자의 심장혈관조영술 사진을 가리키면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치료팀은 김 씨를 수술실로 옮긴 뒤 부풀어 오른 부분을 잘라내고 인공혈관을 끼워 넣었다. 인공혈관을 잇기 위해 장기를 끄집어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대수술이었지만 4시간 만에 끝났다.
센터장인 최 교수는 “심장혈관외과와 심장내과가 따로 치료하면 8시간 이상이 걸린다. 협진으로 수술 시간과 환자의 회복 속도가 배 이상 빨라졌다”고 말했다.
○ 고난도 수술에도 생존율 99%
심장에서 나온 피는 대동맥궁을 통과해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활처럼 생긴 대동맥궁 혈관에 이상이 생기면 수술이 어렵다. 이 부위를 잘못 건들면 머리로 들어가는 혈류를 막아 심각한 뇌손상이 생긴다. 치료팀은 협진을 통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내면서 이 같은 어려움을 돌파하고 있다.
강기홍(가명·53) 씨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껴 지난해 12월 치료팀을 찾았다. 그는 대동맥궁 혈관이 파열돼 서울시내 병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강 씨의 질환은 대동맥 박리. 대동맥 내막에 균열이 생긴 뒤 중간막이 7cm가량 찢어졌다. 두 차례 수술 받은 부위의 아래쪽이 또 파열됐다.
세브란스병원 치료팀 중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강 씨를 마취시킨 뒤 오른쪽과 왼쪽 뇌로 연결된 경동맥에다 가느다란 인공혈관을 꽂아 서로 연결했다. 수술 도중 혈류가 차단돼 뇌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한 혈관 우회로 수술이었다.
수술 도중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지고 후유증이 생길 수 있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3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난 즉시 결과를 확인했다. 스텐트는 찢어진 대동맥에 정확하게 고정됐다. 강 씨는 수술 직후 의식을 회복했다.
치료팀은 “대동맥 박리는 수술에 따른 위험이 큰 편이어서 수술 후 환자가 사망하는 비율이 5∼10%에 이른다”며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정밀한 협진체제로 이 비율을 0.9% 이하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 하이브리드 수술실 확대
대동맥 치료 방법은 발생 부위와 응급 정도에 따라 다르다. 대동맥 파열로 급사할 위험이 높으면 처음부터 수술로 치료한다. 반면 수술 후 후유증이 클 것으로 예상되면 가급적 스텐트 삽입 등 비수술적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수술은 주로 심장외과에서, 비수술은 심장내과에서 진행한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세브란스병원 치료팀은 지난해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넓혔다. 종전 수술실에는 외과의사 1, 2명, X선과 마취 기구 등 간단한 수술 장비가 겨우 들어갔지만 하이브리드 수술실에서는 의료진 10여 명이 협진을 할 수 있다. 또 멸균율 100%를 자랑한다.
하이브리드 수술실 확장으로 치료 실적도 올랐다. 최근 9개월간 혈관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는 650명. 최 교수는 “수술환경 개선과 동시에 협진 체제가 가동됨에 따라 환자가 전년도보다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을 견디려면 체력 관리가 필수. 이를 위해 혈관센터 전문의들은 일주일에 네 번 정도 헬스클럽을 다닌다. 이삭 교수(심장혈관외과)는 “미국 최고 혈관센터인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따라잡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팀워크를 다지고 연구 성과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