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위), 건축학개론(아래).
Q. 얼마 전 ‘건축학 개론’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정말 재미있던데, 저는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썰렁한’ 영화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왜 이렇게 흥행에 전혀 도움 안 되는 제목을 달았을까요?
A. 영화 제목에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 ‘연애학 개론’이나 ‘사랑학 개론’ 같은 제목을 달거나, 혹은 ‘건축학도, 건축하다 그만 만리장성을 쌓아버리다’ 같은 도발적인 서술형 제목을 달면 당장 관객의 눈길을 잡아끌 순 있겠지요. 하지만 영화의 승부는 결국 ‘입소문’에서 납니다. 오히려 ‘그렇고 그런’ 영화인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재미있을 때, 사람들은 인터넷에 ‘완전 재밌다’면서 난리법석을 떨어 구전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이지요.
Q. 영화 ‘화차(火車)’를 보고 심장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여배우 김민희가 그토록 매혹적이면서도 섬뜩한 연기력을 보여줄 것으로 상상도 못했거든요. 솔직히 말해 그녀의 전작인 ‘모비딕’이나 ‘뜨거운 것이 좋아’ 같은 영화에서는 연기가 그저 그랬거든요. 김민희가 왜 갑자기 달라진 걸까요?
A. 아, 특히 이 영화에서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오열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보여준 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변영주 감독은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단 1초도 보여주지 않지만, 미친 듯이 요동치는 그녀의 ‘눈알연기’만으로도 살인의 저주스러운 고통과 욕망이 관객의 피부에 와 닿았으니까요.
이번에 김민희가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그녀가 사랑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유식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욕망의 대상, 즉 ‘타자(他者)’로 기능했다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話者)는 문호(이선균)란 남자입니다. 문호는 결혼을 앞두고 증발해버린 애인 경선(김민희)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추적해가지요. 그러니까 김민희는 무언가를 스스로 ‘말하는’ 인물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말해지는’ 미스터리 속 인물이란 얘기입니다. 문호의 시각이 된 관객은 그녀를 자꾸만 더 짐작하고 상상하게 되니, 이 과정에서 김민희에게 굉장한 ‘아우라’라 생겨나는 것이지요.
※‘셀프 Q&A’는 무비홀릭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