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배우기도 전에 영어교육… 부모의 욕망 아닌가?
아주 오래전 중국에 나무를 잘 기르는 이가 있었다. 성은 곽씨요, 이름은 탁타(*駝·낙타속 짐승을 일컫는 말). 등이 낙타처럼 굽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나무 심기의 달인’이었다. 어떤 나무든 그가 심으면 다 잎이 무성하고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 그 비결을 물으니 탁타가 이렇게 답했다. “저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잘 자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나무의 섭리에 따라 그 본성에 이르게만 할 뿐입니다. 본성이란 뿌리는 펼쳐지려 하고, 흙은 단단하게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준 후엔 건드리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뿌리를 뭉치게 할 뿐 아니라, 흙을 돋워줄 때도 지나치게 하거나 모자라게 했다. 그렇게 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침에 들여다보고, 저녁때 어루만진다. 심지어 나무의 껍질을 손톱으로 벗겨보고 살았는지 말라 죽었는지 시험하고, 뿌리를 흔들어서 흙이 단단한지 부실한지 관찰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나무가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려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는 것이다.(유종원 ‘종수곽탁타전·種樹郭*駝傳’).
참으로 리얼하다. 마치 우리 시대 ‘조기교육’ 풍토를 풍자하기 위해 쓴 글처럼 보일 정도다. 나이가 어려지다 못해 요즘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심지어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영재교육에 돌입한다. 키를 늘리기 위해 안달하고 모국어를 배우기도 전에 외국어를 집어넣는다. 피겨나 수영, 축구 등을 시키는 이유도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조장의 극치다. 무엇보다 생명의 자발적인 흐름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탐욕과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