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괴롭히지만 토양산성화 막아주고 바다 생태계에 도움
동아일보 DB
때가 되면 항상 오던 녀석이 오지 않으니 외려 불안한 마음도 든다. 24일 제주에서 목격됐다지만 그야말로 잠깐 모습만 비친 정도였다. 그렇다고 목을 빼고 기다린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올해에는 마주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 황사(黃砂) 얘기다. 사람들은 봄이 되면 따뜻한 햇살과 파릇파릇한 새싹을 기대하는 마음만큼 황사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만큼 황사는 ‘나쁜 존재’다.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면 즐거웠던 마음도 우울해지기 마련이고, 모래먼지를 뒤집어쓰면 피부가 상할까 봐 짜증도 난다. 안 질환이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니 나들이를 가려 해도 황사예보부터 살펴야 한다. 황사는 이렇듯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훼방만 놓는 천덕꾸러기다. 게다가 국산도 아니고 ‘중국산’이나 ‘몽골산’이니 미움이 더 클 수밖에.
○ ‘흑(黑)’…심신을 위협하는 황사
황사는 황토지대나 사막 등에서 발생한 흙먼지가 바람에 의해 주변으로 퍼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Asian dust)의 주요 발원지는 중국의 황허(黃河) 강 중류에 걸쳐 넓게 분포된 황투 고원(해발 1000∼2000m)과 몽골 고원(해발 900∼1500m)이다. 이 고원은 북쪽으론 몽골, 남쪽으론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를 아우른다.
최근 미세먼지가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김창수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팀은 한 가지 이상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가 2004년 자살한 4341명이 사망하기 3일 전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25% 증가할수록 자살률이 9% 높아졌다는 결론을 얻었다.
정신의학자들도 대기오염이 정신건강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김세주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과)는 “우울증 환자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해 우울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경향이 있다”며 “황사가 심하거나 오래 지속될 경우 우울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영 서울대 보라매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미세먼지에 중금속이 얼마나 많이 포함돼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라며 “높은 수치의 납은 아이들의 학습능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충동적인 선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는 “우울증은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아침이나 월요일, 봄에 더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봄철 우울증이 황사 때문인지, 계절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황사가 신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황사가 발생하면 심장이나 호흡기관 관련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응급실을 방문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다. 면역능력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의 경우 피부 트러블 등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준형 일산백병원 교수(가정의학과)는 “황사 때는 먼지의 농도가 워낙 짙어 이물질이 호흡기에 깊숙이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0년 서울에서 황사가 나타났을 때의 PM10(단위면적당 지름 10마이크로미터 이하 미세먼지의 질량)은 m³당 최고 1354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으로 황사 제외 시 평균치의 30배에 달했다.
최근에는 황사 발생 빈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1980년대 평균 3.9일에 불과했던 황사 발생일수는 1990년대에 7.7일로, 2000년 이후에는 11.8일로 늘어났다.
○ ‘백(白)’…생태계에는 필수적인 황사
우리나라 황사의 주요 발원지인 황투 고원은 22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인류가 500만∼700만 년 전에 탄생했다고 하니 산술적으로도 3배 이상 오래됐다. 황사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부 학자는 그 자연의 법칙 때문에 우리가 받았던 혜택에 주목하고 있다.
이동수 연세대 자연과학부 교수(화학과)는 ‘황사’의 순기능과 관련해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황사의 약 10%를 차지하는 석회성분이 산성비를 중화시키거나 토양산성화를 막아준다는 점이다. 실제 국립환경과학원이 2008년 황사 발원지의 토양 특성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지역이 pH 8.0 이상인 약알칼리 또는 강알칼리 토양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유럽의 급속한 공업화 이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산성비가 집중되면서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산성호수가 속출했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동부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산업화 이후에도 우리나라에는 산성호수가 생기지 않았다. 이 교수는 그 이유로 황사에 실려 연간 10∼50t씩 뿌려지는 석회를 지목했다.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실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황사가 발생하면 유해중금속 농도도 높아질 거란 믿음이다. 사실 이와 관련해선 아직까지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태다. 최근 환경부가 낸 ‘황사 시 중금속 농도 현황’(2008∼2010년)을 보면 서울 등 7대 도시에서 황사가 발생했을 때나 아닐 때나 납(Pb)이나 카드뮴(Cd) 등 유해중금속의 농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사의 토양성분 때문에 철이나 망간(Mn) 농도가 높아졌을 뿐이다. 앞선 2002∼2006년의 수치를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장임석 연구관도 “아직 황사의 모래먼지가 중금속 유입을 더 촉진한다는 보고는 없다”며 “황사와 중금속 간의 관계는 그동안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 동부 연안의 공업지역을 지나면서 유해중금속과 섞인 오염 황사는 분명히 국내 대기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중국 정부가 황사 이동 경로에 있는 지역의 기상자료를 실시간으로 공유해야 관련 연구가 좀 더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중국 측에 기상자료 공유나 황사 관련 연구비용 분담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