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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장환수의 數포츠]붉은 셔츠 우즈, 괴력의 기록도 부활하는가

입력 | 2012-03-31 03:00:00


①붉은 셔츠 ②선데이 터미네이터 ③역전 불허 ④연장 불패

공통점은 무엇일까. 타이거 우즈(37·미국)만 떠올렸다면 미흡하다. 동반 플레이어를 공포에 떨게 한다는 ‘타이거 레드(Tiger Red)’를 순서대로 설명한 말이다. 우즈는 최종 4라운드가 열리는 일요일이면 예외 없이 붉은 셔츠를 입는다. 그가 대회별, 라운드별로 입을 옷은 메인 스폰서인 나이키 등과의 협의 아래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결정된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힘을 내는 우즈는 4라운드에선 더욱 가공할 맹타로 동반 플레이어를 녹다운시킨다. 우즈가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 이상이라면 역전은 꿈도 꾸기 힘들다. 운 좋게 연장전에 합류해도 우승컵에 입을 맞추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과연 그럴까? 인터넷을 뒤져 보니 관련 기사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하지만 타이거 레드를 세밀하게 수치화해 놓은 기사는 아예 없다. 數포츠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않은가.

▶지난 주말 세계는 황제의 부활에 열광했다. 2009년 말 섹스 스캔들이 터진 뒤 끝 모를 추락을 계속했던 우즈는 텃밭인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923일 만에 미국프로골프(PGA)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PGA 통산 72승이자 대회 7번째 우승. 1타 차 선두로 출발한 우즈는 4라운드에서 2타를 줄여 2타를 까먹은 그레임 맥도웰(북아일랜드)에게 5타 차의 완승을 이끌어냈다. 2010년 12월 셰브런 월드 챌린지에서 마지막 날 맥도웰에 4타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연장에 끌려가 역전패를 허용했던 그로선 설욕의 무대였다. 셰브런 월드 챌린지는 타이거우즈재단이 연말에 주최하는 초청대회로 PGA 정규투어 대회는 아니다. 어찌 됐든 이걸 어쩌나. 벌써부터 역전 불허와 연장 불패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양용은(KB금융그룹)이 우즈에 2타 차 열세를 뒤집고 3타나 앞서는 역전승을 거두며 동양인 최초의 PGA 메이저대회 챔피언이 된 적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다. 우리는 타이거 레드의 예외를 찾기 이전에 우즈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를 먼저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자꾸 잊어버리는데 우즈가 인간이라는 사실에도 유념해야 한다. 이런 전제하에 우즈의 우승 확률부터 살펴보자. 평생에 한 번만 우승해도 가문의 영광이라는 PGA 대회에서 우즈는 그동안 265개 대회에 출전해 72번이나 리더보드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우승 확률은 27.2%. 10번에 3번은 우승한다는 얘기다. 3위 안(117회)에 들 확률은 44.2%, 톱10(170회)에 들 확률은 64.2%다. 그가 슬럼프에 빠진 2010년 이후 성적을 제외하면 우승 확률은 28.5%, 톱3는 46.2%, 톱10은 67.5%로 올라간다. 정규투어가 아닌 대회와 유럽투어 대회까지 합하면 우즈는 통산 331개 대회에 나갔고 우승 확률은 28.7%, 톱3는 47.4%, 톱10은 65.6%에 이른다.

▶그렇다면 우즈가 라운드별로 선두에 올랐을 때 우승 확률은 어떻게 될까. 우즈는 그동안 1라운드에서 26번 공동 선두 이상을 차지했고 남은 사흘간 여세를 모아 절반인 13번을 우승했다. 2라운드 공동 선두 이상은 42번이며 이때는 34번 우승해 우승 확률이 81.0%로 치솟는다. 그렇다면 역전 불허 확률인 3라운드 공동 선두 이상 시 우승 확률은 어떻게 될까. 53번의 기회에서 49번 우승해 92.5%. 흥미로운 것은 우즈의 라운드별 선두 횟수가 1라운드 26회, 2라운드 42회, 3라운드 53회, 최종 라운드 72회로 급증한다는 점. 주말이 되면 더욱 스코어를 줄이는 우즈의 뒷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즈는 PGA에서 4번의 4라운드 역전패를 맛봤지만 23번이나 역전승을 일궈 냈다.

▶재미있는 것은 PGA 정규투어가 아닌 대회에서 우즈는 8번 3라운드 공동 선두에 올라 이 가운데 절반인 4번밖에 우승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도 뒤집어 보면 25번의 우승 중 21번이 역전승이라는 얘기다. 모두 8번의 역전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패배는 역시 양용은과 맥도웰에게 당한 패배다. 우즈는 양용은에게 첫 메이저 대회 역전패를, 맥도웰에게 최다 타수 차 역전패를 당했다. 하나 더 거론한다면 2000년 도이체방크 챔피언십에서 2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했지만 공동 2위 5명 가운데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에게 4타 차 역전패를 당한 적도 있다. 우즈는 연장전에선 전체 16승 4패로 80%의 승률을 기록 중이다. 23세인 1998년 빌리 메이페어(미국)와 닉 프라이스(남아공)에게 잇달아 고배를 마신 우즈는 이후 2006년까지 연장전 12연승을 달렸다.

▶그렇다면 우즈가 유난히 마지막 날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 선수들은 최종 라운드에서 심한 압박감을 받는다. 1∼3라운드 때와는 달리 1타의 실수가 몇 계단의 순위 하락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챔피언 조에서 붉은 셔츠를 입은 우즈와 동반 라운드할 때의 중압감은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챔피언 조에는 인산인해를 이룬 갤러리의 눈과 귀가 집중된다. 우즈가 3번 우드로 드라이버를 친 자신보다 멀리 보내고, 파5 홀에서 아이언 샷 두 번으로 이글 온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무뚝뚝한 우즈와 근엄하기 짝이 없는 전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호주)를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역시 우즈의 놀라운 기량이다. 1996년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4타 차 열세를 딛고 연장전 역전 우승으로 PGA 첫 승을 장식한 그는 1998년 조니 워커 클래식에서 어니 엘스(남아공)에게 8타 차 연장 역전승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3타 차 이상 역전승이 11번이며 이 중 4타 차 이상만도 7번이나 된다. 2003년, 2004년, 2008년에 액센추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우즈가 매치 플레이에 강한 것도 2명이 맞대결하는 챔피언 조에서 강한 이유다.

▶우즈는 그동안 보여준 것만큼이나 앞으로 보여줄 게 많은 선수다. 1997년 프로 데뷔 후 지난해까지 15년간 상금왕 9회를 차지한 그는 통산 승수 72승으로 샘 스니드(82승)와 잭 니클라우스(73승·미국)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메이저 대회 우승은 14승으로 니클라우스(18승)를 뒤쫓고 있다. 만 25세 이하 우승 24회, 20대 우승 46회로 최고인 그는 30대 우승(26회)에선 아널드 파머(미국)의 44승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도전 중이다. 우즈가 40대는 물론이고 50세를 넘긴 나이에도 시니어 무대가 아닌 정규투어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