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식물학 2010. 화가 제공
우리 부부는 만 세 돌 지난 딸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세를 얻은 집은 다각형의 외관에 가구마다 테라스를 정원으로 쓸 수 있게 만든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우리 집은 거실에 방 한 칸 딸린 55m²의 작은 아파트였지만, 테라스에는 커다란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는 자투리땅이 있었어요.
어린 딸아이를 두고 온 첫해 겨울 내내 저는 너무도 우울했습니다. 고국에 두고 온 딸아이가 눈에 밟혀 겨우내 병이 날 지경이었지요. 겨울인데도 프랑스의 잔디가 늘 푸른 게 신기했는데, 어느 날 자두나무 아래 민들레가 여기저기 자라나 있는 것을 보았지요.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그게 마치 제 땅을 떠나 남의 땅에 그악스레 뿌리를 내리고 사는 제 처지처럼 여겨졌거든요. 토종 한국 꽃이라 생각했던 민들레를 여기에서 만나다니! 민들레한테는 영토가 없더군요. 결국 친정 부모님이 딸애를 데리고 오셨고 온 집안은 마술처럼 새봄을 맞은 듯 생기가 돌았습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딸아이가 있는 집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게 느껴졌지요.
봄이 오면 가끔 그 집의 정경이 눈물겹게 그립습니다. 작은 꽃모종처럼 먼 고국에서 온 딸아이. 그리고 몇 년 후에 프랑스 땅에서 싹을 틔운 꽃처럼 태어난 아들아이. 그 아이들을 꽃처럼 키우던 작은 화분 같던 정겨운 그 집에서의 일상들. 외국인 유학생으로 낯선 땅에서 절약하며 지낸 일상이 마치 충분한 물 없이 자라는 이 그림 속의 선인장 화분 같군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살 비비고 지지고 볶고 함께 뿌리를 내려 살고 있는 가족의 보금자리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요. 어디에 있든, 또 초라하고 작아도 식구들이 함께 모여 온기와 숨결이 스며 있는 집이라면, 우리는 봄꽃처럼 강인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산책길에서 돌아와 화분들을 정리했습니다. 좀 더 날이 따스해지면 꽃모종을 사다 화분에 심을까 합니다. 날이 어둑해지니 아파트에 불이 하나둘 켜집니다. 그게 꼭 작은 화분들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새봄에는 집집마다 화분에 꽃 하나씩 키우시죠. 한 화분 속, 한 뿌리의 꽃처럼 가족 모두 꽃처럼, 아니 꽃 보며 행복하시라고요. 사실 우리가 꽃을 키우는 게 아니라 어쩌면 꽃이 우리를 키우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지요. 그런 의미에서 퀴즈 하나. 이 화가의 그림에는 언제나 화면 어딘가에 ‘눈(目)’이 그려져 있답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한 번 찾아보세요.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