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스님은 “잘생겼다”는 기자의 말에 “미국에선 전혀 못 듣는데 한국에 오면 그런 얘기를 듣는다”며 소리내어 웃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사춘기 소년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절절한 사랑도 인생의 쓴맛도 경험한 적이 없었지만, 그랬기에 ‘충분하고 완전한 사랑’을 말한 칼릴 지브란(1883∼1931)의 시에 더욱 빠져들었다. 대학 입시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고교 시절, 소년은 독서실에서 홀로 보낸 많은 밤을 지브란의 시로 마무리하면서 큰 위안을 얻었다.
훌쩍 20여 년이 흘러 그는 승려이자 미국 대학교수가 됐고, ‘청춘 멘토’로서 12만 명이 넘는 트위터 팔로어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은 20만 부가 넘게 판매돼 온·오프라인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고 있다. 혜민 스님(39)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사랑에 대한 내 신념의 기반이 바로 지브란의 시”라며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지었다.
특히 그는 지브란의 시 ‘결혼에 대하여’ 중 ‘서로에게 따스한 마음을 주되, 모든 것을 내맡기지는 말고, 함께 서 있으되, 서로에게 그림자가 될 만큼 너무 가까이 하지는 말라’는 내용을 읽고는 ‘사랑의 온전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에게 내 모든 걸 기댄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가장한 나의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저도 연애를 적지 않게 해봤어요. 산전수전 공중전을 거치면서 단맛 쓴맛 다 봤고 치졸함의 끝에도 가봤죠. 그때마다 지브란의 시가 제 마음을 위로해줬어요. 지금 승려로서 더 많은 이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도, 또 사랑과 결혼에 대한 조언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지브란의 시 덕분이죠.”
지브란의 ‘예언자’가 그로 하여금 사랑을 포함해 인간이 가지는 온갖 감정과 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했다면, 인도의 철학자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가 쓴 ‘자기로부터의 혁명’은 그를 본격적인 승려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너무너무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이 책을 처음 읽은 것도 고교 시절이었다.
“그땐 민주화 시위가 잦았어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도망 다닌 적도 꽤 있었죠. 그러던 중 이 책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민주화 시위처럼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혁명이라고 믿었는데, ‘자기로부터의 혁명’이라고 하니 신선하고 흥미로웠죠. 무척 어려워서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가 트위터에 올리는 메시지도 결국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조언이다. “사실 저를 젊은이들의 멘토라고 하면 참 부끄러워요. 저는 결코 그들의 멘토가 될 수 없어요. 저는 저의 멘토일 뿐이죠. 괜히 다른 이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각자의 마음 소리를 들어보세요. 내 삶의 답은 내 안에 있으니까요.”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