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 재판이 많은 미국은 ‘동정 유발’ 패션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남자 친구 2명과 함께 친엄마를 살해한 17세 여성 발레사 로빈슨 사건은 이 전략이 적중한 사례다. 검찰은 발레사를 주범으로 지목했지만 변호인은 남자 친구들의 꾐에 빠진 ‘청순가련 소녀’로 가공하는 데 성공했다. 배심원 앞에 선 발레사는 흰색 스웨터에 무릎을 덮는 밤색 주름치마를 매치했고 발끝이 둥근 구두를 신었다. 그는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자주 쓸어 넘기며 귀를 살짝 드러냈다. 발레사의 외할머니는 “욕을 입에 달고 살던 손녀가 딴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공범들에겐 각각 사형과 25년형이 선고됐지만 발레사는 13년형의 ‘선처’를 받았다.
▷1997년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휠체어 출두’를 선보인 이후 휠체어와 환자복은 검찰에 불려가는 재벌 총수들의 ‘드레스 코드’가 됐다. 1월 태광그룹 이선애 상무가 출두할 땐 간이침대가 등장했다. 학력 위조로 물의를 빚고 잠적했던 신정아 씨는 평소 화려한 스타일 대신에 검은 뿔테 안경에 회색 티셔츠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창원은 누가 봐도 탈옥수 같은 현란한 무늬의 쫄티를 입은 채 검거돼 적어도 옷차림에선 반(反)사회성을 숨기지 않았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