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방송기자 윤범기는 ‘한포우사’를 차릴까 고민한 적이 있다. ‘한국여자 포기하고 우크라이나 여자 사랑하는 남자’를 겨냥해 결혼정보사업을 하면 장사가 될 것 같아서다. 그의 여자친구는 신도림동 전세 2억 원짜리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린 친구네를 가보고는 ‘이 정도 안 되면 결혼 못 한다’고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 헤어졌다. 개룡뻔남(개천에서 난 용이 될 뻔한 남자)인 그에게는 불가능했다. 전문대를 나와 비정규직으로 월 120만 원을 받는 36세의 쌍둥이 형도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단군 이래 최초로 서울의 보통 총각도 빈곤국 여성 아니면 결혼을 못하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낸 책이 ‘결혼불능 세대’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취업 포기의 ‘삼포세대’를 겨냥한 책은 적지 않다. 위로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준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있고, 2007년 “그들에게 필요한 건 바리케이드와 짱돌”이라고 주장한 ‘88만원 세대’도 있다. 이른바 진보 성향인 우석훈은 책을 읽고도 싸우지 않는 청년들에게 실망했다며 최근 절판 선언을 했다. ‘결혼불능 세대’는 바로 그 진보 진영의 해법이 잘못이라고 판을 확 뒤집는다.
▷연애를 하려면 직업이 필수다. 문제 해결의 핵심도 일자리 창출에 있다. 좌파의 만병통치약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하지만 이 책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라는 건 기업더러 신규 채용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김진숙 씨의 고공크레인 농성 때 “희망버스는 진보의 재앙”이라고 비판했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의 입을 통해서다. 세계화와 중국이 존재하는 한, 비정규직 자체가 정상인 세상이 됐다. 비정규직으로도 살 수 있도록 동일임금 동일노동의 ‘플라스틱 밥그릇’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마음 놓고 일하는 일자리가 많아지면 여성이 아기 낳고 2∼3년 기르다 다시 일하는 것도 어려울 게 없다. 오전 11시∼오후 3시 근무 같은 유연 근로가 다양해지면 보육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그런데도 좌파가 비정규직 철폐나 무상보육처럼 비현실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건 “그들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상위 10∼20%를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질타했다. 진보의 선의만 믿다간 진짜 결혼불능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