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가까이 계속돼온 韓中 외교전 극적 출구
○ 완강하게 북송 정책 고수했던 중국
중국은 2008년 초부터 자국 내 외국공관에 진입한 탈북자의 한국행을 묵인해 오던 기존 관행을 바꿔 이들의 출국을 허가하지 않았다. 북한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공관 내 탈북자들은 길게는 3년 가까이 사실상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고 일부는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중국은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 달라”는 한국의 요구에 여러 가지 조건을 걸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여기에는 이미 공관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대신 다시는 공관에 탈북자 진입을 허용하지 말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그러나 한국은 “인도주의적 사안에 대해 그런 식의 협상을 할 수는 없다”며 이를 모두 거부했다. 중국 측은 정부의 강경한 자세에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고, 이규형 주중 대사를 비롯한 한국 당국자들과의 면담을 모두 거부했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적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도 언론 등을 통해 흘러나왔다.
○ 북한의 로켓 도발이 변수?
중국은 2월 중순 동아일보의 보도를 계기로 논란이 된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에도 “탈북자들은 난민(難民)이 아닌 경제적 이유로 중국에 들어온 불법 월경자”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은 한국과 국제사회가 애타게 북송 중단을 촉구해온 탈북자들을 결국 강제 송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묘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는 외교통상부 당국자들과 회담 의제를 조율하면서 “조용한 외교를 희망한다”며 협조할 의향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탈북자들의 한국행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한국은 향후 문제제기 수위를 낮추고, 중국은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부 당국자는 “정부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등 국제사회에까지 이 문제를 가져가 연일 강공을 펴는 것을 보고 중국으로서도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 내 온건파가 움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후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북한의 로켓 발사 중지를 촉구한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후 주석은 당시 “(북한의) 위성 발사는 옳지 않다. 북한 정권은 민생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며 과거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북한을 압박했다.
○ 중국의 속내는
그러나 이번 탈북자들의 한국행 허용으로 중국의 탈북자 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자들의 행렬은 북-중 접경지역의 치안 불안은 물론이고 북한 정권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 정부는 공관에 장기 체류해온 11명을 돌려보내는 것으로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를 서둘러 종결지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날 공관 내 탈북자들의 입국에 대해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알려지면서 아직 중국에 남아 있는 탈북자 7명의 입국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탈북자들의 첫 입국 시도가 알려지는 바람에 중국이 남은 이들의 한국행 허용 시기를 미루거나 결정을 아예 번복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