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희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그는 꼼꼼하고 성실하다. 여러 일에 관여해 시간의 틈새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그간 쌓인 스트레스로 머릿속 회로가 엉킨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해도 몸은 바쁘게 움직이던 때와 같은 주파수로 돌아간다니, 인체의 구조가 두렵고 신비롭기만 하다. C 선생의 병명은 ‘현대 문명병’이라 해야 할 것 같다.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병을 무엇으로 풀어야 할까. 내가 “연애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마디 던지니, 동료 하나가 맞는 말이라며 훈수를 둔다.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 연애를 종용하다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도 환갑을 앞두고 있으니 내 말뜻을 이해할 것이다. ‘나이 이순이 넘으면 어떤 행동을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는 옛 선인의 말에 기대어 던진 농담 속 진담, 사랑이라는 말을 넓은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인생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고독한 레이스다. 한평생 평탄한 길만 걸어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름의 고통과 슬픔, 외로움을 안고 험한 길을 걸어오느라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 나도 그중 하나다.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몇 해 전 여행길에 올랐다. 호주 여행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잠을 청했는데, 그 길로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뉴질랜드 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돼서도 무의식 상태에 빠진 채로 동행한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10시간 만에 깨어났다. 각종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당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의 두뇌 회로가 가동을 멈추고 수면상태로 들어갔던 게 아니었나 싶다. 전기 콘센트에 여러 개의 플러그를 꽂으면 과부하가 일어나듯 C 선생의 머릿속 회로도 이런 상태가 아닌지 염려스럽다.
이후 나는 해결 못한 인생의 숙제로 더욱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해답을 얻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내게 어느 날 가까운 분이 또 하나의 문제를 던져 주었다. 인생을 숙제(걱정·근심)로 살 것인가, 축제(꿈·희망)로 살 것인가?
그렇다. 인생을 숙제로만 살 게 아니라 축제로 살아야 한다. 숙제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지만, 풀리지 않는 걱정을 끌어안고 애태우며 귀한 날들을 소진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삶이 설레거나 기쁘지 않아도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축제의 마당으로 밀어 넣어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축제 속에 살다 보면 자연히 숙제도 풀릴 것만 같다.
한동희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