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정성희]앵그리 버드

입력 | 2012-04-06 03:00:00


날개도, 다리도 없고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새 ‘앵그리 버드(angry bird)’가 노키아를 제치고 핀란드의 대표 상품이 됐다. 게임 출시 이후 70억 번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 앵그리 버드는 스마트폰 최고의 게임 애플리케이션이다. 새알을 훔쳐간 녹색돼지를 새총에 장전된 새들이 날아가 응징하는 게임이다. 두 살배기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게임 스토리가 단순하고 폭력성이 덜해 여자들도 즐긴다. 이 게임을 개발한 로비오사의 줄리앙 푸르조 매니저는 작년 6월 한국을 방문해 “단순함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새가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캐릭터를 선점한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이름부터 ‘새’를 연상시키는 새누리당은 당명(黨名)에 대한 젊은층의 호감을 높이기 위해 앵그리 버드를 내세웠다. 새누리당 홍보물에 앵그리 버드 분장을 한 홍준표 의원이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라며 너스레를 떤다. 홍 의원이 붉은색 넥타이, 화를 잘 내는 성격 때문에 얻은 ‘홍그리 버드’란 별명을 광고 이미지에 이용했다.

▷앵그리 버드의 모습보다 의미를 부각한 것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안 원장은 3, 4일 전남대와 경북대에서 개최한 특강에서 질문을 한 학생들에게 앵그리 버드 인형을 선물했다. 총선과 관련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안 원장에 따르면 앵그리 버드 게임에서 새알을 훔쳐 먹는 돼지는 기득권을 상징한다. “착하고 순한 새들이 몸을 던져 기득권의 성채를 깨는” 것이 앵그리 버드의 의미다. 선거에서 약자인 국민이 투표를 통해 기득권을 혼내 주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돼지로 상징되는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은 누구일까. 여당인 새누리당이거나 민주당과 통진당의 야권연대 또는 정치권 전체일 수도 있다. 안 교수는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박원순 후보가 선거 막판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맹추격을 받는 상황에서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불을 붙인 로자 파크스를 언급한 편지를 박 캠프에 보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안 교수의 편지는 실제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꽂은 꽃이 반전(反戰)운동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게임 캐릭터가 정치적 상징이 되는 시대다. 기호와 상징을 적절히 구사해야 현실정치에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