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유럽연합(EU) FTA의 가격인하 효과를 점검한 결과 상당수 품목의 소비자가격이 관세 인하에도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스 원액에 대한 50% 안팎의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 미국산 오렌지주스와 포도주스의 가격이 한미 FTA 발효 후에도 변동이 없다가 공정위가 현장 조사에 나서자 관련 업체가 부랴부랴 가격을 인하했다. 8%의 관세가 완전 철폐된 브라운 전동칫솔, 휘슬러 프라이팬의 가격도 그대로였다. 한-칠레 FTA에도 불구하고 와인 값이 내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지자 일부 와인 수입업체가 10% 정도 값을 내리기도 했지만 대다수 수입업체는 모른 체하고 있다.
FTA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열심히 FTA를 체결했으나 수입 업체들 배만 불려주는 격인데 이런 식이라면 누구를 위해 그 힘든 협상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FTA 체결 이후에도 가격이 낮아지지 않는 것은 소비자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가격이 비싼 유럽제 핸드백과 양주는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식돼 한-EU FTA 발효 이후에도 수입업체들은 가격경쟁을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고가 제품일수록 오히려 품귀 현상까지 빚고 있으며 수입업체는 부풀려진 가격을 고스란히 챙기고 있다.
FTA 체결은 일부 산업 분야가 받게 되는 불이익이나 피해를 감수하면서 전체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또 수출업체에 시장을 넓혀주는 등 국제 분업시스템을 활용해 전체 국가경제의 생산성을 높여 국민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국내 소비자 후생이 증진되지 않는다면 힘들여 FTA에 나설 이유가 크게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