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윌리엄 터너.
이런 날은 따뜻한 집안에 있으면서 밖을 내다보면 훨씬 더 안온함과 포근함을 대조적으로 느낄 수 있지요. 하지만 폭풍우 부는 날, 바다에서 배를 타 본 사람은 알 겁니다. 목전에서 죽음이 파도처럼 너울거리며 순식간에 목숨을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를 말입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말입니다. 여기 이 그림은 인상파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영국 풍경화의 거장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라는 그림입니다. 밤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났을 때의 바다의 모습과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그의 그림은 대자연의 압도적인 풍경을 그린 것이 많은데, 특히 폭풍우나 눈보라치는 바다의 광경을 그린 그림들이 압권입니다.
그림을 큰 화면으로 보면 흔들리는 증기선과 회오리치는 눈보라와 폭풍우, 파도에 곧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위태로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이렇듯 절박한 느낌을 주는 것은 화가의 극한 체험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갑판 돛대에 제발 나를 묶어주시오. 그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절대로 나를 풀어주지 마시오.”
밤새도록 그는 돛대에 매달려 사나운 짐승처럼 포효하는 폭풍에 자기 자신의 몸을 내주며 처절하게 고통을 감수해냈다고 합니다. 몸으로 느낀 그 고통을 화폭에 옮긴 것이 바로 이 그림이지요. 그저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 아니라, 그의 온몸에 밤새도록 각인된 고통과 대자연의 위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위대한 그림입니다. 후에 화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진짜 바다의 폭풍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돛대에 몸을 묶은 다음 폭풍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 시간 동안이나 묶여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폭풍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림에 스민 화가의 무서운 화혼(畵魂)과 치열한 열정에 작가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객관적 거리감이라는 미명하에 너무도 ‘안전거리 확보’에만 신경 쓰며 살고, 또 작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것은 또한 잔인한 4월의 한파와 강풍을 메마른 몸으로 견디며 소생의 희망을 꿈꾸고 있을 꽃나무들이 몸을 뒤흔들며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