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민낯/김지룡, 갈릴레오 SNC 지음/456쪽·1만6800원·애플북스
1920년 미국에서 태어난 세계 최초의 생리대 ‘코텍스’ 광고. 여성이 생리대를 떳떳하고 자유롭게구입하는 시대가 됐음을 보여준다. 애플북스 제공
오늘날 모든 여성이 매달 착용하는 일회용 생리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피가 튀고 비명소리가 교차하던 미군 야전병원에서 태어났다. 밀려드는 환자 탓에 면으로 만든 붕대가 바닥나자 킴벌리클라크사는 셀루코튼이라는 소재를 면 대용품으로 내놓았다. 이 소재는 면보다 다섯 배나 흡수력이 강했지만 값은 쌌다. 일회용이었기에 위생 면에서도 좋았다. 그런데 야전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이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릴 때 이를 활용한 것이다. 이후 킴벌리사는 1920년 세계 최초의 일회용 생리대 ‘코텍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생리대나 비아그라처럼 오늘날 일상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물건들이 지닌 질곡의 역사를 흥미롭게 살핀다. 일상용품을 은밀한 것(포경수술, 브래지어 등), 익숙한 것(면도기, 안경 등), 맛있는 것(돈가스, 라면 등), 신기한 것(게임기, 엘리베이터 등), 재미있는 것(레고, 포르노 등)으로 나눈 뒤 이 물건들의 초기 모습과 변천 과정, 에피소드 및 관련 인물, 유통 과정 등을 보여주며 우리 삶의 일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냈다.
면도기의 기원을 살펴보면서는 수염을 기르는 것을 경멸했던 로마인들이 공중목욕탕에서 족집게를 이용해 체모를 제거하고 상대방의 음모를 뽑아주기도 했음을 알려준다. 철학과 문학, 정치를 논하면서 동시에 온몸에 난 털을 뽑고 있는 로마 남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피식 나온다. 치약이 나오기 전 상류층 로마 여인은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포르투갈인의 소변으로 양치질을 했다. 소변이 미백 효과가 있는데, 특히 포르투갈인의 오줌은 보통 오줌보다 농도가 진해 효과가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인간보다 긴 삶을 살아온 사물의 역사를 10쪽 이내로 정리하다 보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끝나버리는 느낌도 든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