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급성장의 그늘 다룬 ‘울민한 중국인’
베이징어언대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1997년 ‘중국사회계층분석’에서 중국의 경제적 계층 분화 현상을 해부하면서 개혁 개방 이후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을 가져온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그늘을 조명한 바 있다. 이번에는 성장에서 소외된 하위 99%의 울민을 진단했다. “중국인은 외형적으로는 장대하게 성장했지만 내면은 쉽게 구멍이 나는 얇디얇은 종잇장이나 다름없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아를 상실한 울민이 배어 있다.”
집단적 울민이 잘 드러나는 계층은 고등교육을 받고 도시로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이다. 대졸자 초임이 2000위안(약 36만 원)으로 파출부 월급보다 못한 수준이다. 저자는 “결혼을 앞둔 베이징 젊은이들이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를 때 어떤 친구들은 부모가 준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다”며 “당신은 울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극단적으로 팽창된 중국의 물질주의도 울민을 잉태한다. “우리는 개성적인 삶을 산다는 사람들을 (미디어 등에 의해) 소개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개성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부와 몸값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닌가.” 개혁 개방 이후 사회주의적 획일성이 자본주의적 다양성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남과 다르게 사는 삶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는 돈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비판이다.
다소 뜻밖인 부분은 저자가 집단적 울민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부 주도의 공평한 분배보다는 개인의 ‘마음 다스리기’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좇아 도시로 몰려들기보다 뭔가 다른 삶을 추구해보라고 제안한다. 또 과도한 소비 행태를 지적하며 “마음의 3할만 욕망에 내줘라. 나머지 7할은 이성으로 채우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몇 년 전 일본 여행에서 만난 노부부의 일화를 소개한다.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쟁반을 들고 온 남자 주인은 도쿄대 사학박사이고, 여주인은 문학박사였다. 우리 일행은 순간 숙연해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작은 만족이다.”
저자는 1990년대 초 “나는 펀칭(憤靑·분노한 청년)이다”라고 선언했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라는 메시지였다. 당시 젊은이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은 그가 20여 년이 지난 뒤 집단적 울민을 분석하며 내면의 수양을 대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올해 초에 나온 이 책은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자기 수양이라는 해법에 중국의 젊은이들이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울민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준 저자의 진단에는 분명 이들이 끌리고 있는 듯하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