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어링 휠을 잡는 순간 질주 본능을 억제하기 힘든 럭셔리 세단이 있다. 유럽산 스포츠카와 견줄 만한 주행 성능의 닛산 인피니티 M시리즈가 그 주인공. 차를 제작할 때 실용성과 안정감, 정숙성을 우선시하는 일본차의 성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델이다.
미국 ‘컨슈머리포트’는 최근호 자동차 특집판에서 ‘주행이 즐거운 차(Fun To Drive)’ 1위에 M37(럭셔리 세단 부문)을 선정했다. 컨슈머리포트는 “과거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놓고 차를 비교했지만, 요즘 차는 파워 면에서 충분히 강력하다. 좋은 핸들링과 동력 전달 방식, 정숙성 등 여러 가지가 강력한 힘과 결합해야 차를 운전하면서 웃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피니티 M시리즈는 3.7ℓ V6 DOHC VQ37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M37과 5.5ℓ V8 DOHC VK55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M56 2가지 모델이 있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M37.
M37의 크기(길이 4945mm, 폭 1845mm, 높이 1500mm)는 이 차의 탄생 배경을 짐작케 한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보다 크지만, 대형 세단인 S클래스나 7시리즈보다 한 치수 작다. 한국식으로 구분하면 ‘준대형급’으로 독일 프리미엄 세단과 경쟁하지 않고 틈새시장을 흡수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셈이다.
키를 주머니에 넣은 채 차량에 접근하자 손잡이 안쪽에 조명이 켜져 어두운 곳에서도 문을 쉽게 열 수 있도록 도왔다. M37 실내는 우드그레인과 크롬, 가죽, 알루미늄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화려한 편이다. 미국 자동차 잡지 ‘워즈오토월드’가 ‘프리미엄 세단 중 가장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앞좌석은 버킷시트에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를 탑승자의 몸을 감싸듯 둥글게 배치해 안락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계기판에서 보여주는 정보의 양이 적고, 센터페시아 상단 모니터의 해상도가 떨어지는 점은 아쉬웠다.
답답한 서울 도심을 빠져나와 자동차전용도로에 올라선 뒤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그 순간 차량이 튀어나가 몸이 뒤로 쏠리며 시트에 파묻혔다. 세단으로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폭발적인 가속감이다. 사람들이 M시리즈의 운전석에만 앉으면 야수로 돌변하는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M37의 탁월한 주행 성능은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연료 흐름을 최적으로 조절하는 가변식 흡기 밸브 리프트(VVEL)와 수동모드가 결합한 7단 자동변속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특히 M37의 기어비는 급가속을 요구하는 스포츠 주행에 어울리게 세팅됐다. 저단 기어비는 동급 경쟁차보다 월등히 높은데, 기어비가 높으면 가속은 뛰어나지만 연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M37은 저단 기어비를 높이는 대신, 일정 속도 이상의 고단 기어비를 오히려 낮춤으로써 연료 낭비를 상쇄시키는 영리함을 갖췄다. 기어비의 간격이 넓으면 변속이 거칠어질 수 있지만, 인피니티는 기술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M37의 또 다른 특징은 동급 최저 수준의 공기저항계수(0.27cd)다. 차체가 유려한 곡선으로 이뤄져 어지간한 속도에서는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150km/h가 넘는 고속에서도 실내가 조용했다. 또한 소음과 관련해 재미있는 기능이 숨어 있는데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ctive Noise Control)이 바로 그것. 차량 내부로 들어오는 엔진소음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 뒤 불편한 소음을 상쇄시키는 음파를 4개의 도어 스피커와 우퍼를 통해 내보내 경쾌한 엔진음을 만들어낸다.
#판매가격은 또 하나의 경쟁력
M37의 공인연비 9.5km/ℓ는 조금 아쉽다. 고출력을 감안하면 결코 높지 않은 수치지만, 연비 10km/ℓ를 훌쩍 넘기는 대형 세단이 흔한 고유가 시대에 소비자를 만족시키기는 힘들어 보인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