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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재현]일본은 小國이 아니었다

입력 | 2012-04-09 03:00:00


올해는 임진년이다. 60년 단위로 순환하는 갑자(甲子)를 기준으로 일곱 갑자(420년) 전 임진왜란(조일전쟁)이 발발했다. 1592년 4월 13일이다. 조선은 당시 왜(倭)라고 부르던 일본의 침공으로 전쟁발발 20일 만에 도성 한양을 잃고 7년간 전라도와 평안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국토를 유린당했다. 임진왜란은 한국인들에게 트라우마를 형성했다. 작은 섬나라라고 얕봤던 일본에 ‘큰코’다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임란 전이건 후이건 유독 일본에 대해선 얕보는 의식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당시 선조들이 일본의 국력과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전란을 미연에 막지 못한 것을 따갑게 비판한다. 일본이 한국보다 영토도 넓고 인구도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경제대국으로서 일본에 대한 인식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로 국한된다. 과거의 일본에 대해선 한국에 문물(文物)이 한참 뒤처졌던 소국(小國)이라는 발상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착각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이미 군사상 세계 최강국이었다. 당시 일본이 보유한 조총은 50만 자루였다. 유럽 대륙이 보유한 전체 총기를 능가하는 수였다. 오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투력 강한 정규군이 30만 명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입된 병력은 그 절반인 15만 명이었다. 반면 조선의 정규군은 5만∼6만 명밖에 안됐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1000만도 채 안됐지만 일본은 그 배를 웃도는 2000만에 육박했다. 일본 인구가 한국을 따라잡은 것은 통일신라시대였다.

▷한일 격차는 임란 이후 더 벌어진다.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 뒤 일본의 수도가 된 에도(지금의 도쿄)는 18세기 인구 100만의 세계 최대 도시였다. 당시 청(淸)의 수도 베이징과 프랑스 파리의 인구가 50만, 영국 런던의 인구가 80만이었다. 한양 인구는 30만에 불과했다. 일본은 이때 이미 가부키를 통해 세계 최초로 회전무대를 발명했고, ‘소바’와 ‘스시’ 같은 세계 최초의 패스트푸드를 만들었다. 일본이 근대화의 모범생이 된 배경엔 이런 국력이 숨어 있었다. 우리가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는 것도 좋지만 실제 이하로 일본을 폄하하는 일도 삼갈 때가 됐다.

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