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아비 부 子: 아들 자相: 서로 상 隱: 숨길 은
섭공(葉公)이 어느 날 공자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우리 마을에 몸가짐이 바른 자가 있으니, 그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것을 고발했습니다.(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논어’ 자로 편) ‘직궁(直躬)’이란 몸가짐을 바르게 하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사람 이름이다. 섭공의 질문에 공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는 “父爲子隱 子爲父隱” 속에 오히려 정직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게 우리 마을의 도리라고 공자는 말했다. 그는 인륜이 땅에 떨어진 당대의 상황 속에서 家族 중심의 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공자가 볼 때 앞의 것은 ‘자(慈)’이고 뒤의 것은 ‘효(孝)’다. ‘장자(莊子)’ 도척(盜蹠) 편에는 “직궁이 아버지를 고발하고 미생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은 믿음의 우환이다(直躬證父 尾生溺死 信之患也)”라고 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당무(當務)’에서는 “직궁의 믿음은 믿음이 없는 것만 못하다(直躬之信 不若無信)”고 하면서 공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공자의 입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지지를 얻었다. ‘구당서(舊唐書)’ 서언백전(徐彦伯傳)에는 “말할 수 있으나 말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은이다(可言而不言者曰隱)”라고 했다. 공자의 뜻을 적극적으로 새긴 것이다. 나아가 주희는 공자의 ‘은’을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의 지극함이라고 풀이했다. 이후 적지 않은 오해가 생겼다. 이는 공사(公私)를 구별하지 못하는 인정주의(人情主義)에 함몰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감추고 감싸주는 것은 부자간에 그치지 않고 군신 간에도 적용된다. 동당벌이(同黨伐異)란 말이 있듯이 사회 전반에서 잘못을 서로 은폐해 주는 심각한 온정주의도 문제지만,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는 비정적(非情的)인 인간관계 또한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