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마미술관서 ‘만화로 보는 세상’전
1970, 80년대 ‘명랑만화’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만화가들을 조명한 ‘만화로 보는 세상’전에 나온 신문수의 ‘추억의 캐릭터 퍼레이드’. 이번 전시에선 명랑만화부터 젊은 감성의 카툰과 웹툰, 만화적 캐릭터와 판타지를 차용한 현대미술작품까지 폭넓게 선보였다. 소마미술관 제공
모든 만화를 불량식품처럼 몰아간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야단맞을까 봐 만화책을 숨겨두고 읽었고, 때만 되면 만화가들은 저질문화의 주범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랬던 만화가 요즘 소통과 교육을 위한 효과적 매체이자 미래의 문화산업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만화로 보는 세상’전은 이 같은 변화를 읽는 자리다. 1970, 80년대 명랑만화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이정문 신문수 윤승운 박수동의 원화가 미술관에 입성했고, 젊은 감성의 카툰과 웹툰, 만화 캐릭터나 환상을 형상화한 미술가 배준성 변대웅 김채원 등 총 27명의 100여 점이 4개 파트로 전시 중이다.
만화와 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전시는 ‘명랑만화’를 화두로 삼아 유머와 재치가 담긴 다양한 만화와 현대미술작품을 선보였다.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짚는 재미가 쏠쏠하다. 6월 17일까지. 1000∼3000원. 02-425-1077
○ 만화 속 우리의 이야기 ‘만화로 보는 세상’전에 선보인 박수동의 만화. 소마미술관 제공
전시는 일상의 가벼운 에피소드와 재미난 캐릭터를 결합한 명랑만화의 역사를 되짚는다. 1960년대 후반 어린이용 명랑만화를 연재했던 길창덕에 이어 명랑만화의 거대한 숲을 일군 작가들의 공간이 차례로 펼쳐진다. 머리에 쓰면 투명인간이 되는 감투가 나오는 ‘도깨비 감투’와 ‘로봇찌빠’의 신문수(73), 역사와 만화를 접목한 ‘맹꽁이 서당’ 등 지식학습만화의 원조 윤승운(69), 성냥개비에 잉크를 찍어 그린 ‘번데기 야구단’과 ‘소년 고인돌’의 박수동(71), 일본 로봇만화영화에 대항해 한국산 토종 로봇을 처음 내세운 ‘철인 캉타우’와 ‘심술 가족’의 이정문(71)이 그들이다.
이들은 문하생 없이 밤새워 손으로 만화를 그리고 말풍선을 일일이 손글씨로 채우며 1970, 80년대 집과 학교의 잔잔한 일상을 웃음과 버무려 냈다. 여유와 완결미를 갖춘 선(신문수), 데생의 법칙을 무시한 듯 자유로운 선(윤승운), 구불거리는 두툼한 선(박수동), 단순 명료한 선의 미학(이정문). 각기 독창적 그림체와 주인공을 창안한 이들의 만화세계는 원화와 책, 스케치와 캔버스 작업을 통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전시에는 만화적 재미와 따스한 서정을 융합한 ‘386C’의 황중환을 비롯해 기안84(패션왕) 정필원(마음이 만든 것), 홍작가(도로시밴드) 등 카툰, 웹툰 작가도 참여했다.
○ 미술 속 캐릭터와 판타지 만화에 등장했던 캐릭터와 환상적 이야기는 이제 현대미술에서도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수용되고 있다. 아톰과 미키마우스가 만난 이동기의 아토마우스, 왕방울 눈의 소녀 캐릭터를 만든 마리 킴, 익숙한 만화 캐릭터를 재해석한 김성재, ‘톰과 제리’를 새롭게 접근한 최정유, 한옥 그림에 디즈니 만화의 캐릭터를 접목한 김은술 등. 명랑만화와 비교해 보면, 현대미술에선 서구와 일본 대중문화 등 외래적 캐릭터와 판타지의 영향이 짙게 스며 있어 변화하는 시대의 감수성을 엿보게 한다.
이 밖에 상상하고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한 작품이 수두룩하다. 귀여운 캐릭터 형상의 동물들이 따뜻한 휴식의 의미를 전하고(노준), 1등만 주목받는 사회에서 힘없는 작은 토끼들이 당당해지라고 외치며(신명환), 즐거운 펭귄들은 힘든 상황이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말한다(여동헌). 종이 만화의 아날로그적 감성에서 만화적 테마의 현대미술까지 아우른 전시가 삭막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유쾌한 공상에 빠져들게 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