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
가슴속 응어리를 삭이며 반백 년을 함께한 부부 역으로 각각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상 과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우미화(왼쪽), 박용수 씨. 극단 이루 제공
극단 이루의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는 이런 아쉬움을 깨끗이 씻어준다. 부부의 인연이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풍성한 드라마를 갖췄다. 등장인물은 저마다 기막힌 사연을 품고 있다. 코믹한 표면의 캐릭터 이면에 가슴 아픈 사연을 감추고 있다. 그 사연들이 저마다 얽히고설키면서 ‘부부의 인연’이란 작품의 큰 그림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무대는 복사꽃 흐드러지게 핀 경주의 고택이다. 극의 내레이터 격인 겸이(정인겸)는 배 속에 아기를 가진 아내와 이혼을 결심하고 부모님이 사는 이 고택에 내려온다. 무뚝뚝한, 전형적인 경상도 사내인 아버지(박용수)와 그런 아버지에게 천추의 한을 품고 있으면서도 50년 세월을 같이 산 어머니(우미화)는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이웃집엔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남편 박 상사(조주현)에게 온갖 구박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사는 서면댁(염혜란)이 산다.
그것은 지구가 도는 소리가 들린다는 아버지의 말처럼 “시간 속에 우리가 있는 게 아이더라. (우리네) 인연이 만들어 가는 게 시간이더라”는 깨우침과 맞닿는다.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것은 결국 평생 서로를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그것은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니체의 윤리적 전회(轉回)를 실천하는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감칠맛 나게 구사하는 배우들의 연기앙상블도 뛰어나다. 특히 동아연극상 연기상(박용수)과 대한민국 연극대상 여자연기상(우미화)을 수상한 노부부 역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다. 무대 왼쪽 복숭아나무를 무대 중앙 반투명막에 투사해 꽃 그림자를 빚어내고 들릴 듯 말 듯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려주는 무대 연출은 시적(詩的)이다. 극단 대표로 대본을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손기호 씨의 탄탄한 내공이 함빡 느껴진다.
:: i :: 15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만5000∼3만원. 02-747-322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